전원생활을 꿈꾸다

[직영건축-번외]

주홍완 2025. 5. 14. 11:04

5월 14일(수)

 

평소에 전화와 블로그 댓글로 응원과 염려를 아끼지 않는 친구로부터 지난 주말에 전화가 왔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친구인데, 한동안 글이 안 올라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 전화를 한 거라고 했다.

 

친구는 요즘은 글을 읽는 세태가 아닌데 영상으로 기록해 유튜브에 올렸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라며 아쉬워하며 나중에 책으로라도 내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까지 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학창시절 추억까지 떠올리며 한참 수다를 떨고 통화를 마무리 했다.

 

이 친구가 단 댓글을 보고 아내가 처음 했던 말은 “이 여자가 누군데 당신 블로그에 계속 댓글을 달지?”였다.

 

이름이 ‘재희’라 여자라고 오해를 했던 것이다.

 

이 친구를 비롯해 도움이 필요해 전화를 하면 먼 거리라도 기꺼이 달려와 준 친구들이 있어 늘 고맙다.

 

인테리어 목공작업이 끝난 뒤 그냥 놀았던 건 아니고, 다음 공정을 위한 준비작업과 텃밭을 일구고 모종을 심는 일 등을 했다.

 

우선 어질러진 현장을 청소했다. 폐자재는 마대에 담아 치워 놓으면 됐지만, 틈새와 바닥에 있는 먼지는 아무리 쓸고 에어건으로 불어내도 별 소용이 없었다. 비질을 하면 당장은 깨끗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날아올랐던 먼지들이 그대로 내려앉기 떄문이다.

 

욕실벽에 붙여 놓은 방수합판 위에 방수 프라이머를 칠하는 일도 했다. 벽돌을 쌓는 습식공법이 아니라 방수합판 위에 CRC보드를 붙이고, 그 위를 타일로 마감하는 건식공법을 택했기 때문에 필요한 작업이다.

욕실 벽 방수합판 위에 칠한 방수 프라이머.

 

쌓여 있는 파벽돌 더미에서 쓸 만한 것들을 골라 정으로 모서리를 다듬은 다음 터 밖으로 옮기는 일도 했다. 이렇게 다듬은 파벽돌들은 마당에 가마솥 걸 화덕을 만들고, 화단에 경계를 짓거나 블루베리 등을 심을 자리를 화분처럼 쌓아 올리는 일 등에 쓸 계획이다.

 

텃밭을 일구는 일은 이번에도 쉽지 않았다. 작년에 곡괭이로 일군 자리는 상대적으로 수월했지만 삽으로 깊게 파서 돌을 골라내고 흙을 일구는 일은 언제나 힘이 들었다. 그 위에 퇴비를 흩뿌리고 열흘가량 묵혔다가 다시 삽으로 뒤집은 다음 두둑을 만들었다.

 

전에 비해 체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인지 곡괭이질을 하면 특히 빨리 지쳤다. 1시간 반 정도 일을 하면 30분 이상을 쉬어야 했다. 공사가 다 끝나고 텃밭까지 경운기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내년부터는 이 수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이번에 심은 모종은 작년과 비슷하게 청양고추 10포기, 일반고추, 꽈리고추, 아삭이고추 각각 5포기, 들깨 4포기, 몇 가지 상추 20포기, 쌈배추 2포기, 청겨자채 4포기, 대파 50포기, 토마토 4포기, 가지 2포기, 수박 2포기, 애호박 3포기, 멧돌호박 2포기 등이다.

 

비닐을 뚫어 모종을 심는 일은 전적으로 아내가 했다.

올해 텃밭.

 

호박과 수박 구덩이엔 퇴비를 쓰지 않고 나무를 태운 뒤 나온 재만 채웠다.

수박모 두 포기.

 

같은 날, 양평으로 내려와 살고 싶다는 큰애의 초등학교 친구 ㅇㅇ이 엄마, 아빠가 오셨다. 11시에 만나 우리 땅을 소개해 준 부동산중개사가 안내하는 집들을 함께 보고 점심식사까지 한 후 서후리로 와서 건축현장을 둘러봤다.

 

ㅇㅇ엄마께서 집에 대한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이렇게 좋은 말을 들으면 그동안의 노고를 인정받는 기분이 들면서 힘들었던 게 싹 가시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인 일을 대하게 되면 우선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 이유가 이런데 있다. 진심을 담아서 하면 더욱 좋고, 맘에 안 들거나 관점 또는 취향이 달라 진심을 담기 어려운 경우라고 하더라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격려라고 생각한다.  

 

간혹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현장에 와서 이러니저러니 부정적인 평가를 하거나 맞지 않는 얘기를 늘어놓는 일이 있는데, 그럴 때면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나도 과거에 누군가의 노력과 수고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거나 무시한 일이 있었을 것이고, 그게 상대에게는 상처가 됐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칡넝쿨을 뽑아내고 두릅나무 주변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도 했다. 요즘은 전국 어디나 침엽수림의 그늘이 사라진 자리엔 어김없이 칡과 가시박이란 잡초가 창궐한다. 이 풀들이 줄기를 뻗으며 나무를 휘감으면 그 나무는 말라 죽는다. 2년 전에 사다 심은 엄나무와 두릅나무가 그렇게 해서 죽었다. 마당 깊숙이까지 침투한 칡넝쿨은 더욱 커다란 골칫덩이가 됐다. 한 해만 그대로 둬도 뿌리가 굵어져 쉽게 뽑히지 않기 떄문이다. 그럴 때면 낫이나 가위로 잘라내야만 하는데 이것들이 언제 줄기를 다시 내서 번질지 모르기 때문에 적기 방제가 꼭 필요해 보인다.

 

체리, 사과, 대추, 복숭아 나무 등에 거름을 주고 전지도 해줬다.

 

하자고 들면 일이 끝이 없는데, 안 하자고 들면 다 그냥 넘겨도 되는게 정원 가꾸기와 텃밭농사다. 자리가 잡힐 때까지 몇 년 동안은 일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처가에서 꺽꽂이를 해 옮겨 심은 오색수국을 3년 만에 전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