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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백수생활 1일차

주홍완 2023. 3. 2. 18:01

얼마 전부터 실행 중인 일과에 맞춰 백수생활 첫 날 아침의 문을 열었다.

 

오전엔 9시부터 계단오르기를 한 시간 한다. 1층부터 14층 꼭대기까지 한 계단 한 계단 무릎을 끝까지 펴고 허벅지에 힘을 주며 오른다. 내려 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데 이를 10번 반복하는 것이다. 7번 정도 오르면 반팔 셔츠를 입어도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계단오르기가 끝나면 공원에 나가 턱걸이로 아침운동을 마무리 한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 다음엔 인터넷에 들어가 소셜미디어와 뉴스를 둘러본다.

오후엔 개를 산책시킨다.

틈틈이 유튜브를 통해 자가건축에 필요한 기술과 시공 프로세스도 정리하고 넷플릭스 영화도 본다.

 

집짓기를 시작할 때까지는 이 패턴으로 일과를 이어가려 한다.

 

바로 어제 2023년 2월 28일 정년퇴직 했다. 사규상 만 60세가 되는 해의 생일 달 말일이 정년이니 만기제대를 한 셈이다.

1989년 1월 1일, 졸업을 앞두고 들어간 회사에서 34년 2개월을 일했다. 한 세대로 불리는 30년이 훌쩍 넘는 긴 세월을 한 회사에서 보낸 것이다.

 

한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했다는 걸 대단한 성과로 추켜세우며 부러워하는 분들이 주변에 여럿 있다. 그 분들 시각이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나는 무능했거나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엔 몇 차례 손에 든 떡을 내려놓을까 번민한 적이 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길 용기가 없었다. 거기에 이런 나약함 조차 단번에 떨쳐버릴 정도로 조건이 좋은 이직 제안도 받아보지 못했으니 무능했다.

 

내가 다닌 회사는 고용 안정성이 높고 급여도 그리 부족하지 않은데다 정년까지 가는데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곳이다. 직장인에겐 좋은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사주가 없다. 직원 개개인이 높은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대체로 그런 곳은 개인의 능력이나 성과가 제대로 인정·보상이 안 된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공채 입사자 경우엔 승진이나 보직 모든 면에서 나란히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능력과 성과 이외의 요소들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를 떠나게 돼 시원섭섭 하겠다”고 누군가 얘기를 할 때마다 “시원하긴 한데 섭섭하진 않다”고 답한 이유가 그런데 있다. 아무튼 운 좋게 괜찮은 곳에 들어가 직장인으로 치자면 천수를 누리고 나온 셈이니 회사에 고마울 따름이다.

 

그동안 아내에게는 생계를 위한 돈벌이는 단 하루도 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했고 그 때마다 아내는 나를 응원해 줬다. 그래서 우선 앞으로 1~2년은 집을 짓고 다듬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런 의지를 지키고 계획을 이루려면 건강과 체력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 만큼 자기관리도 철저하게 해나갈 작정이다.

 

건축을 시작하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겠지만, 지난 회사생활을 돌아보는 글도 차근차근 적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