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을 꿈꾸다

아!! 이제는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

주홍완 2019. 12. 6. 14:52

나는 충북 보은의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다.

서울유학생활은 중학교 2학년 10월 초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농촌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 서울 생활은 초기부터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린 나이라 부모님 품이 몹시도 그리웠기 때문인 점도 있었지만, 맑은 샘물을 떠마시며 살던 내게 텁텁한 보리차는 적응이 어려웠다. 마시면 갈증이 해소되기는커녕 뭔가 속이 답답해지기까지 했다.

 

사람과 차가 복잡한 것도, 24시간 웅웅 거리는 도시소음도 싫었다. 고향집 사랑채 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솔잎과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가던 바람소리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갔다. 외양간을 지키고 앉아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되새김질하던 소도 보고 싶었다. 사랑 마루에 앉으면 보이던 나무를 옮겨 다니며 짝을 맞추고 지저귀던 꾀꼬리들도 눈앞에 자꾸 아른거렸다.

 

벌써 서울생활이 40년을 넘겼지만, 이곳의 삶은 여전히 남의 옷을 걸치고 있는 것 마냥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몇 해전부터는 부쩍 이 번잡한 환경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됐다.

 

88년 가을, 처음 직장을 고르던 때도 고향 근처인 청주나 대전으로 가고자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88올림픽을 치르느라 인력을 큰 폭으로 충원했던 방송사들이 그해 말엔 신규인력 채용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인지 오히려 광화문 옆 서울 한복판에서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게 됐다. 하지만 탈서울의 꿈은 더욱 속에서 더욱 영글어 갔다고 볼 수 있다.

 

은퇴가 몇 년 남지 않은 지금의 나이에 이르면서 본격적인 서울탈출계획을 세우게 됐다. 초기엔 충남 태안이나 강원도 강릉의 바닷가로 내려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바다를 동경했던 건 충청북도 산골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그래서 탁 트인 바다가 늘 그리웠는지 모른다.

 

지난 2015년엔 혼자 자전거로 태안반도 구석구석 누비면서 살펴봤다. 바닷가 동네들은 골목까지 들어가 보고 주민들과 얘기도 나눠봤다. 일부 주민들로부터 태안화력에서 나오는 매연과 분진 때문에 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부의 탈석탄발전 정책은 피할 수 없는 길이 되고 있으니 10년쯤 지나면 화력발전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 그렇게만 되면 아름다운 풍광, 풍부한 먹을거리, 고즈넉한 분위기 등을 고루 갖춘 태안반도 쪽은 제2의 삶을 여유 있게 꾸려가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라고 봤다.

 

그런데 아내와 큰아이가 반대를 했다. 집에서 너무 멀리 가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특히 큰아이는 몇 년 후면 자신도 독립할 나이가 되는데 앞으로 같이 생활할 수 있는 날도 많지 않을 것 아니겠느냐며 굳이 시골로 내려가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렸다. 그래서 타협책으로 내놓은 것이 서울 근교에 자리 잡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우선 땅을 고르는 기준을 몇 가지 정했다.

1. 집에서 출퇴근 하듯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 승용차로 막히지 않을 경우 편도 1시간 이내 지역을 찾는다.

2. 단기간 투자목적이 아닌 만큼 땅을 되팔아 시세차익을 남기거나 개발계획을 고려해 땅을 고르지 않는다.

3. 공기가 맑고 주변이 조용해야 한다. 원주민들이 자리 잡고 있는 동네, 공장이나 상업시설 근처, 큰 도로 주변은 되도록이면 피한다.

4. 유실수와 정원수, 채소 등을 가꿀 수 있어야 하니 최소 면적이 200평은 넘어야 한다.

5. 집은 크게 짓지 않는다. 6평 크기의 농막부터 고려하되 아무리 넓어도 15평을 넘지 않는다.

6. 토지 매입비용으로 2억 원을 넘기지 않도록 한다.

7. 지나친 오지나 고지대, 깊은 산속 등은 피한다.

8. 지금 살고 있는 곳이 한강변이니 만큼 강 주변 또는 강을 바라보는 전망을 우선 고려하지 않는다.

 

위 기준을 바탕으로 경기도 광주, 양평, 가평, 남양주 등을 후보지로 올렸다.

 

법원 경매사이트를 주기적으로 들여다보며 지역별로 괜찮은 물건들을 찾아내고 이를 경매사건번호, 경매 차수, 낙찰가, 최저경매가/감정가 대비 낙찰가율, 권리관계 등을 요약해 DB를 만들기 시작했다. 좋은 땅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적정한 시세 등을 파악하는데 법원경매사이트와 공매사이트가 도움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마침 택견 도반 중에 골프장개발 전문가인 이 선생이 계셔서 경매물건에 대한 권리관계 분석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지도상으로 괜찮은 물건이 보인다 싶으면 이 선생께 분석을 청했고 현장을 직접 방문해 살펴보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경매 참여는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입지 좋은 물건이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권리·채무관계에서 결점이 크지 않은 땅은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방법을 바꿔 현지 부동산을 찾아 땅을 알아보는 방법을 병행하기로 했다.

 

먼저 양평군 옥천면 덕평리에 있는 부동산 중개인의 안내를 받아 옥천면 일대의 용천리, 신복리, 덕평리, 백안리 땅을 둘러보았다. 입지, 환경, 가격 등 삼박자를 모두 갖춘 땅은 역시 찾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땅들은 원주민이 오래 전부터 차지하고 있었고 그보다 조금 못한 땅도 10여년 이상 전에 진입한 외지인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양평지역엔 북향의 고지대에도 집들이 많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이니 베이비부머 세대의 끝자락에 있는 내가 이제와서 싸고 좋은 땅을 구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간혹 좋은 땅이 보이기도 했자만 가격이 너무 비싸 흥정을 시작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가 무산된 후 강상면 교평리 땅을 소개받아 계약서를 쓰기 직전까지 갔던 적도 있었다. 입지는 좋았지만, 수변구역과 농림지역이라는 개발제한 법규 때문에 현지인이 아닌 나로서는 진입이나 정착이 당장은 불가능에 가까운 땅이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지역을 바꿔 서울에서 좀 더 가까운 서종면과 남양주 쪽을 알아보기로 했다. 남양주엔 아내가 아는 분이 살고 계셔서 그 분께 잘 아는 부동산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도 했다. 서종면 쪽은 법원 경매물건 탐방을 시작으로 직접 부동산을 찾아 가기로 했다.

 

마침내 문호리에 있는 부동산 소개로 맘에 드는 땅을 찾을 수 있었다. 남양주 쪽에서 부동산을 소개받기 전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 과정에서 서종면 수능리에 먼저 땅을 마련한 친구 종익의 조언도 많은 도움이 됐다.

 

이제부터 서종면에 땅을 마련하고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기록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