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토)
법원경매에 올라온 땅을 둘러보기 위해 이른 아침을 먹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 문호리를 향해 차를 달렸다.
올림픽대로와 경춘고속도로를 지나 서종IC에서 빠져 조금 가다보면 커다란 테라로사 건물이 나타난다. 전에는 그냥 지나치곤 했는데, 오늘은 아내가 아침도 안 먹고 나온 길이라 모닝커피 한잔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대찬성이다.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에 빵을 먹으며 아내는 아주 좋아했다. 이런 소소한 일에 느끼는 행복이라니...
경매 사이트에 나온 토지를 현장에 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지대가 꽤 높은 곳이었다. 게다가 남쪽은 답답할 정도로 높았다. 그 지역의 지형이 전체적으로 그러니 주변 토지가 모두 마찬가지였다.
경매물건은 역시나... 실망을 하고 차를 돌려 나오면서 문호리 다운타운에 있는 부동산에 들러 보기로 했다. 몇 군데 부동산이 눈에 띄긴 했지만 주차할 공간이 없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문호리 삼거리 가장 번화한 곳에 가서야 주차장이 있는 부동산을 발견하곤 차를 댔다.
막 주차를 하는데 옆에 SUV 한 대가 들어왔다. 그 운전자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 옆에 차를 대고는 먼저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뒤를 따라 들어가니 부동산 사장은 여자였다. 어떤 용도로 쓸 어느 정도 면적의 땅을 찾고 있다고 얘기를 건네는데 앞서 들어온 남자가 여기저기 매물로 나온 땅들이라고 꺼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리는 그가 동업자나 그 지역 원주민인줄 알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여자 사장이 자기는 선약된 손님이 있다며 박 사장이라 부르는 그 남자에게 우리를 안내해 매물들을 보여 주라고 부탁했다.
아내와 나는 박 사장 차를 타고 출발했다. 차 안에서 박 사장 얘기를 들어보니 부동산 사장과는 과거 동업관계였는데 지금은 독립해 토목·건축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부동산에서 일러준 세 군데 정도의 땅을 돌아봤는데 전혀 맘에 들지 않았다. 다른 땅은 없냐고 물었더니 마지막으로 한 곳이 남았고 거기서 부동산 사장을 보기로 했다고 얘기했다.
그 땅은 보태닉가든인 ‘오르다온’ 초입에 있는 임야였다. 도로 바로 위의 산자락이었는데 맨 아래 땅은 팔려서 두 필지로 이미 분할이 됐고, 맨 위 땅도 팔렸는데 중간 땅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 땅이 지금 부동산에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은 아닌데 토지주를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가서보니 동향인 땅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미리 세워 둔 기준에 흡족하게 미치진 못했지만 가격 대비로 보면 괜찮아 보였다. 전체 면적은 511평이었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그 땅위에 여러 그루 서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부동산 사장이 연세 지긋해 보이는 남자손님을 모시고 왔다. 그 분은 나를 만나자마자 명함을 건네며 자신을 소개했다. 강동구와 남양주 두 곳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병원장이라고 했다.
이 일대에 수만 평의 땅을 사놓고 사업을 계획 중인 양 원장님이라고 부동산 사장이 부연설명을 했다. 양 원장께서 "내년 말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서양평IC가 생기면 바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며 이 땅을 꼭 사란다.
그 분은 부동산 사장에게 얼마에 나온 땅이냐고 묻더니, 땅주인에게 자기가 바로 전화를 걸었다. 두 분이 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 부동산 사장이 얘기했다.
양 원장께서 땅주인과 간단한 안부인사를 주고받더니 평당 가격에서 10만 원을 깍아 달란다. 땅주인의 “허허 그렇게 하시지요”라는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울려 나왔다.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분이 있나 하는 한편으로 ‘이 분들이 뭐지?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 나타나서 내게 땅을 권하고 가격을 깍아 주기까지 하니 비즈니스 패밀리는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모든 게 갑자기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너무 어둡게만 볼 일은 아니니 일단은 호의로 생각하기로 했다.
안내한 박 사장도 이 땅 전체를 매입하라고 우리에게 권했다. 나도 이 정도 금액이라면 욕심을 부려 볼만한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땅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박 사장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고향이 가평이고 나와 나이가 동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외모는 나보다 10살 가까이 어려 보였는데... 깜짝 놀랐다. 자신이 갖고 있다는 420평짜리 땅도 보여줬다. 남향의 양지바른 곳에 야트막한 산을 뒤에 두고 있는 임야였다. 그런데 원주민들이 사는 동네 뒷자리였다. 가격도 꽤 비쌌다. 무엇보다도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은 내 계획엔 딱히 들어맞지 않는 땅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서후리 땅이 정말 괜찮은 땅이냐?”고 물었다. “우선 남향이 아니고 동향이다. 그마저 탁 트여있지 못하고 골짜기 건너편 능선이 시야를 가린다. 남쪽엔 낮은 언덕이 있고 그 위의 신축 주택 때문에 전망이 그다지 시원하지 못하다. 서쪽인 뒤는 청계산이 가로막고 있으니 해가 남향에 비해 일찍 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면 좋은 입지는 아니다. 다만 가격 대비로는 괜찮은 땅이다. 우선 조용하고 청계산 자락의 잣나무숲 끝에 있어 공기가 참 맑은 것 같다. 모두 이주민들로 이루어진 동네라 텃세나 갈등도 없을 것이다. 땅도 제법 넓다. 거기에 이 정도 경관과 전망, 금액이라면 상대적으로 가치있는 땅이라는 본다“고 내 생각을 얘기했다.
퇴직 후 오두막을 한 채 짓고 정원수와 유실수 등을 가꾸며 후 잠실 집을 오가는 방식으로 생활할 계획인데 땅에 큰돈을 들인다는 것은 현명치 못해 보였다. 게다가 잠실 아파트는 한강 바로 옆(100m 정도 거리)이고 전철역도 가까워 여러모로 편리하고 좋으니, 세컨드하우스는 다른 기준과 각도에서 정해도 괜찮을 거라는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조금 전에 보고 온 땅을 지번과 함께 알려줬더니, 전에 오르다온에 가서 숙박도 해본 곳으로 주변을 잘 알고 있다며 좋은 땅이라는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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