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로마(Point Loma)는 샌디에고를 바깥에서 감싸는 형태로 길게 삐죽 나와 있는 미션베이 남쪽 반도의 끝에 있다. Point는 우리말로 '곶'을 의미한다.
이곳 반도의 대부분 지역은 해군기지이고, 그 끝자락에 Cabrillo National Monument라는 국립공원이 있다. 주변 풍광이 아름답고 샌디에고 전역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샌디에고 도착 첫 날.
Sea World 관광을 마치고, La Jolla 해변까지 둘러 본 다음 Point Loma 입구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5시 30분경. 반도 입구에 있는 검문소에서 경비원이 나오더니 차를 세웠다.
경비원 : 이곳은 해군기지가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아침 5:00 ~ 오후 5:00까지만 개방을 하고 있다. 이외의 시간엔 일반인들 출입을 금하고 있으니 되돌아 나가야 한다.
나 : .... ??
경비원 : 면허증을 잠깐 달라. 검문소 안쪽으로 돌아 나오면 주겠다.
샌디에고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포인트로마에 개방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정보를 보지 못했다. 경비원에게 제지를 받자 순간 황당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되돌아 나와 다음 목적지인 코로나도섬으로 향했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포인트 로마에 관한 정보는 낙조가 환상적인 곳이라는 것 외엔 없었다. 그 끝에 국립공원이 있는지도 몰랐다.
코로나도섬에서 몇 개 남지 않은 미국식 건축의 표본이라는 Del Coronado Hotel에 들러 내부 구경을 했다. 레스토랑을 가로질러 해변으로 나가 맨발로 모래밭을 거닐며 아이들과 뛰어 놀기도 했다.
낙조가 내려앉던 그 해변에서 멀리 포인트로마가 보였다. 높은 산등성이가 길게 이어진 그곳에서 태평양을 내려다보면 꽤 좋은 경치가 눈에 들어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날, 오전에 발보아파크와 미드웨이 항모 근처 관광을 끝내고 Subway에 들러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포인트로마를 다시 찾은 시각이 오후 2시경이었다.
개방시간이라 그런지 어제 되돌아 나와야 했던 검문소는 텅 비어 있었다.
검문소를 지나 반도 끝을 향해 가는 길 양옆으로 보이는 경치가 꽤나 좋았다. 그 끝에 어떤 광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사뭇 궁금해 하며 가기를 한참, 저 앞에 매표소가 나타났다.
입구에 입장료가 5달러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차를 세우니 중년 부인으로 보이는 매표원이 밝은 얼굴로 맞는다.
매표원 : 이곳은 National Monument라서 입장료를 받고 있다.
나 : NPS(National Park Service)의 Annual Pass(연간 이용권)를 갖고 있다.
매표원 : 보여 달라.
나 : (당연히 챙겨왔을 줄 알았는데 찾아봐도 없다.) 아무래도 집에 두고 그냥 온 것 같다.
매표원 : 어디서 왔는가?
나 : LA 아래에 있는 토랜스에서 왔다.
매표원 : 토랜스 어느 동네인가?
나 : 빅터 파크 근처에 산다.
매표원 : 오! 그러냐? 반갑다. 내가 전에 토랜스에 산 적이 있는데 참 살기 좋은 동네다. 그렇지 않은가? 다음부터는 잊지말고 꼭 챙겨 다니고, 오늘은 그냥 들어가도 좋다.
환한 얼굴로 맞아주고 내 얘기를 그대로 믿어준 매표원 덕분에 기분이 정말 상큼해 졌다. 쌓인 피로도 한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자기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부심이 있기에 이렇게 친절과 여유가 자연스럽게 배나오는 것 아닐까? 남과 굳이 견주지 않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이렇게 밝고 환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서부여행(캐년지역)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National Monument는 National Park보다 규모가 작은 국립공원이다. 작은 반도의 끝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곳 포인트로마도 그래서 Monument로 분류되나보다.
Visitor Center내의 전망대에 서니 샌디에고 시내와 코로나도섬, Chula Vista와 그 아래쪽까지 샌디에고의 모든 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정말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장관이었다.
이곳에서 보니 코로나도섬의 Del Coronado 호텔과 어제 낙조 무렵에 걸었던 그 뒤쪽 해변이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구글맵에서 봤던대로 정말 코로나도 섬의 절반 정도가 온통 해군기지로, 비행장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영화관에서 잠시 후부터 25분짜리 고래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아이들은 Junior Ranger 되기 위한 시험지를 각각 받아들고 문제를 풀기에 바쁘다. 문제란 것이 이 곳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을 포인트별로 적는다든지, 카브리오가 이곳에 첫발을 디딜 때 타고 온 선박과 당시의 생활상 등에 관해 묻고 답하는 것이었다.
고래 다큐멘터리는 연안에서 태어난 고래가 엄마고래를 따라 북극까지 1만 마일을 갔다가 되돌아오는 여정과 새끼고래의 성장 과정 그리고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위험 등을 기록한 것이다. 어제 본 Sea World 고래쇼의 감동이 되살아나면서 자연보호를 왜 해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었다.
특히 고기를 잡기위해 쳐놓은 그물에 걸린 새끼고래가 발버둥치다가 점점 지쳐가는 모습. 안타깝게도 옆에서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어미고래를 볼 땐 가슴이 먹먹해지기까지 했다.
결국엔 새끼고래가 완전히 탈진한 후에 잠수부들이 들어가 그물을 잘라냈다. 새끼고래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엄마고래와 함께 북극을 향해 헤엄쳐 갔다.
영화 제작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이 새끼고래는 정말 운이 좋은 경우였다. 이런 위험에 빠지는 대부분의 고래들은 그냥 죽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다큐멘터리는 전하고 있었다.
Visitor Center 위쪽으로 돌라가면 1854년에 지어져 1855년 첫 불을 밝혔다는 Old Point Loma Light House라는 등대가 있다.
맑은 날이면 39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이 등대의 불빛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등대는 36년간 안개 낀 날을 빼곤 언제나 뱃사람들에게 샌디에고 항으로의 길을 밝혀주는 최고의 길잡이였다. 그 당시 화폐로 3천500달러나 들여 최고의 기술로 제작했다는 램프가 이곳에 전시돼 있다.
이 등대는 외관상으로는 최상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안개와 낮게 깔리는 구름에 의해 수시로 불빛이 차단되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1891년 3월 23일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언덕 아래쪽에 새로 지은 등대에 그 역할을 넘겨준 채 조용히 서서 관광객들만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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