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벌판 가운데 자리한 얼바니의 호텔에서 맞은 겨울 아침은 꽤나 스산했다.
히터가 밤새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인지 일어나 앉았는데 몸은 천근 만근이었다. 입안도 모래를 한웅큼 씹은 것 마냥 텁텁했다.
아직도 깊은 잠에 취해 있는 아이들은 흔들어 깨워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친 눈으로 바라봐서인지 창밖의 눈 쌓인 프리웨이를 오가는 차들이 모두 졸린 듯 보였다. 어제 하루 900Km 거리를 내쳐 달려오느라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쳤기 때문이었을까?
보스톤을 코앞에 두고 있다고 해도 가야 할 거리는 아직도 170마일, 3시간 남짓 걸릴테니 만만찮다. 아이들을 간신히 깨워 호텔식당으로 데려갔다. 와플과 요거트, 시리얼 등으로 아침식사를 대충 때우고는 길을 재촉했다.
도로 양옆으로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선 한갓진 길을 달리다보니 몸도 기분도 서서히 나아졌다. 어제 캐나다-미국 국경검문소를 지나 달렸던 길은 훨씬 더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것 같다. 낚시꾼에겐 놓친 고기가 더 크고, 실연 당한 사람에겐 이루지 못한 사랑이 더 애틋하고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것과 같은 걸까?
한참을 달리다보니 애팔래치안 산맥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애팔래치안 산맥은 한국으로 치면 백두대간에 해당하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동부 지역을 남북으로 이어 달리는 2천400마일에 이르는 긴 산맥이다.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배운 기억이 언뜻 떠올랐다.
보스톤은 초입에서부터 오래된 도시의 멋이 느껴졌다. 회색 하늘 아래 고색창연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건물들, 구불구불한 길, 거리의 많은 사람들을 보니 그 동안 며칠은 별천지에 있다가 현실세계로 다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시내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들른 곳이 하버드대학이었다. 투어를 위해 학교 근처 노상에 주차를 하고는 가까운 곳에 있는 비지터센터를 찾아 갔다. 학교 지도와 몇 가지 필요한 정보를 얻은 다음 걸어서 학교로 들어갔다.
대학 내 Harvard Yard에 있는 존 하버드 동상의 왼발을 만지면 나중에 하버드에 입학할 수 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너도 나도 어찌나 만져댔는지 왼발 끝이 노랗게 반짝거린다.
우리 가족이 동상에 다가가는 그 사이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와서 연신 왼발을 손으로 문질러 댔다. 자식을 더 좋은 환경의 더 나은 학교로 보내고자 하는 부모들의 욕심과 집념은 국가나 인종에 상관 없이 모두 같아 보였다. 우리 부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렇게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존 하버드가 실제로는 하버드 대학의 설립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존 하버드는 영국에서 이민온지 1년만인 1638년 9월 결핵으로 불과 37살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유언에 따라 그의 전 재산이었던 779파운드와 책 400권이 1636년 9월에 설립된 캠브리지 근처의 New College에 기증됐고, 그것을 토대로 도서관이 건립됐다고 한다.
1639년, 이 New College가 Harvard College로 개명되었다. 1780년 새로운 메사츄세츠 헌법에 의해 New College는 주 내에서 첫 번째 University가 됐다.
그러니 존 하버드는 당연히 하버드대학의 설립자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하버드 동상은 실제 존 하버드의 외모를 묘사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Daniel Chester French라는 조각가가 한 학생을 모델로 해서 만든 것이라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열심히 신발 끝을 만져대면서 나중에 이곳으로 꼭 유학을 오겠다고 다짐했다. 정말 우리 가족 모두가 바라는대로 되려는지...
하버드 교정을 나와 주변지역을 둘러보다가 기념품도 사고 교정 밖에 있는 기숙사 구경도 했다. 찰스강변도 거닐어 봤다. 눈길 가는 그 모든 곳이 아름다웠다. 그 속을 거니는 사람들도 모두 여유롭고 멋져 보였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MIT.
하버드대학과는 달리 현대식 건물에 젊은 학생들도 모두가 활기차 보였다. 이곳이 세계최고의 공대라는 바로 그곳인가?
로비에 있는 안내센터에서 교내 지도를 받아들고 건물안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어느 넓은 홀에서는 수트를 제대로 차려 입은 남녀 학생이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참 보기가 좋았다. 그저 수박 겉핥기식이었지만 학생들 대부분이 정말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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