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문호리 부동산에서 토지주와 만나기로 한 날이다. 일찌감치 8시 15분에 집을 나섰다. 서후리 땅에 먼저 들러 그 시각엔 아침햇살이 어떻게 내려 쬐는지를 직접 보고, 한편으로 여전히 불안감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아내도 안심시키기 위함이었다.
계약을 위한 약속시각은 10시 30분이었는데, 가급적 일찍 만나 처리하자고 내가 부동산에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생질의 딸 결혼식이 오후 4시 홍대앞 호텔에 잡혀있었고, 낮시간으로 갈수록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막히는 올림픽대로 사정도 감안했다.
팔당대교를 건너 두물머리를 지나 목왕리와 수능리를 거쳐 가는데 40분가량 걸렸다. 현장엔 쌀쌀한 겨울공기를 뚫고 내려온 밝은 햇살이 땅과 나무들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멀리서 택지를 닦는 중인지 굴삭기 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 주변은 평온해 보였다. 저녁나절 왔을 때의 느낌과는 크게 달랐다. 아내도 전과 달리 어느 정도는 만족스런 눈치였다.
다만, 남쪽 언덕 위에 들어선 세 채의 집이 오늘도 너무 높아 보였다. 우리 터가 햇볕을 조금이라도 많이, 오래 받으려면 윗쪽은 절개를 적게 하고 아래쪽을 높게 돋궈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부동산에서 보기로 한 시각까지는 여유가 있어 일단 걸어서 주변 집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오르다온 쪽으로 올라가니 청계산 중턱 아래쯤에 집터 공사를 하는 굴삭기와 사람들 모습이 보였다. 아까 도착했을 때 들려오던 굴삭기 소리의 현장이었다.
아내와 손을 잡고 오르며 주변의 집들을 둘러보니 참 잘 짓고 정원도 잘 가꿨다는 느낌이 들었다. 터를 닦고 있는 공사장 가까이 가니 개들이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위쪽 공사장에서 나온 주인이 나서 개들을 말렸지만, 급기야 두 마리 개가 우리 앞으로까지 뛰어와 계속 짖어댔다. 조용한 동네 시끄럽게 할 수 없어 개들을 진정시키며 돌아서 내려오려는데 주인이 내려와서는 들어와 차 한잔 하고 가라며 우리를 이끌었다.
정원을 아기자기하게 잘 가꾼 집이었다. 집주인은 자신을 이 동네 반장이며 토끼띠라고 소개했다. 나와 동갑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인상이 너무 좋아 안으로 청했다며 직접 담궜다는 오미자차를 권했다. 그 분은 자신의 인생역정, 이 동네의 주민 구성 내역, 주민회비, 마을발전기금 등 이곳 생활에 관한 여러 얘기를 했다. 참 열심히 사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계속 이어질 기세였지만, 부동산과 약속시각이 다가와 인사를 하고 나왔다.
10시 30분, 부동산에서 토지주를 만났다. 55년생이라니 우리 나이로 65세다. 차에서 내리는데 다리에 장애가 있어 보였다. 나중에 말씀하시는데 40초반에 다발성경화증을 앓으면서 다리를 못 쓰게 됐다고 하셨다. 인상이 참 후덕해 보였다.
계약을 체결하기 전, 부동산 사장이 공동명의로 하지 않겠냐고 우리 부부에게 물어봤다. 옆에 있던 아내가 반색을 한다. 부동산 중개사가 여자인 경우, 대부분이 부부 공동명의로 할 것을 권하는 것 같다. 거래금액이 크지 않아 공동명의는 생각지 않았는데... 가정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흔쾌히 동의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결혼식 시간 때문에 가봐야겠다는 얘기를 하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토지주께서 식사라도 같이 하고 가면 좋은데 아쉽다고 하셨다. 서울서 부동산 거래할 때는 좀체 듣기 어려운 말이다. 그런 말씀을 들으니, 대부분의 사람은 풍기는 인상과 인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됐다.
친구 종익이 오늘 양평에 모델하우스 구경을 하러 나오는 김에 내가 산 집터를 둘러보겠다고 했었다. 서울로 향하던 중 테라로사 앞을 지나는데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묻길래 집안 결혼식 얘기를 하고 함께 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친구는 볼일을 끝내고 오후에 땅을 둘러본 뒤 느낀 점을 말해 주겠다고 했다.
계약까지 했으니 이제 됐다는 안도감 너머로, 개발과 건축 등을 포함해 앞으로 해나갈 일들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걱정이 함께 밀려왔다.
여기까지 왔으니 어쨌든 가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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