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을 꿈꾸다

겨울의 북한강변길, 그 몽환적인 풍경

주홍완 2019. 12. 31. 15:10

12월 8일(일)

오늘은 나 혼자 양평을 다녀왔다.

아내는 어제 친정에 내려갔다. 장인께서 낙상으로 입원해 계셔서 처제와 주말마다 번갈아 내려가는 중이다.

 

지난 목요일, 문호리 서호건축 박 사장과 오늘 8시 30분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아침을 일찍 차려 먹고 집을 나섰는데 날씨가 찼다. 자동차 앞유리에 하얗게 내려앉은 성애를 긁어내는데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팔당대교를 건넌 다음 두물머리 시장 앞에서 우회전해 북한강변을 따라 가는 길을 달렸다. 오른편엔 밤사이 내린 눈인지 공기 중의 수분이 얼어붙은 성애인지가 나뭇가지와 산을 온통 하얗게 덮고 있다. 왼편의 북한강은 푸르다 못해 검은색을 띠며 잔물결을 일렁이고 있다. 내가 달리는 길이 흑과 백 사이에서 세상을 정확하게 가르고 있었다. 마치 흑백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이 세상 어떤 경계가 이다지도 확연할 수 있을까? 오가는 차도 없고 내 차의 속도마저 낮추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더욱 확연하게 다가왔다. 신비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가까운 장래에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이런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문호리 서호건축에 도착했다. 박 사장은 아직 출근 전인지 사무실 문이 잠겨있었다. 도착하길 기다리는 사이 10분이 채 못 되는 시간 동안 건축자재들이 쌓인 건물 외부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는데 기온이 서울보다 꽤 낮은지 많이 추웠다. 박 사장이 도착하고, 사무실에 들어가 차를 한잔 하며 개발허가와 건축허가, 토목공사 방법 등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고 의견을 나눴다.

 

박 사장과 함께 사무실을 나와 함께 서후리로 향했다. 수능리를 지나던 중 근처에 있는 친구 땅 얘기를 했더니 박 사장이 한번 들렀다 가자고 했다. 서후리 가는 길에서 벗어나 500m 정도 거리에 있는 ‘한울마을’이라는 전원주택 단지 내의 땅이다. 서후리에서 2Km 남짓 떨어져 있는 곳이다. 친구 땅은 공사가 한창인 옆집의 인부들 주차장이 돼 있었다. 지난 봄에 나와 친구가 심은 에메랄드그린 나무들이 제법 잘 자라 있었다. 박 사장은 이곳도 좋은 땅이라고 평을 했다.

 

서후리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박 사장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는데 문호리에 비해 이곳이 더 춥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서울보다는 엄청 춥다는 것이다. 골짜기 지역이라 그런지 더 추운 것 같았다. 앱으로 현지 날씨를 보니 영하 4도라고 나왔다.

 

땅이 고도차가 있어 위쪽을 얼마나 절개하고 아래쪽은 얼마나 성토해야 할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박 사장은 위쪽은 도로 높이에서 2m 정도 되는 곳까지 절개를 하고 그 흙으로 아래쪽을 메우면 외부 흙이 많이 필요치는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맨 아래쪽은 석축을 높게 쌓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나도 남쪽에 높게 들어선 집들만 아니라면 터를 높이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생각이 점점 복잡해진다. 석축을 높이고 외부 흙을 많이 받는 것이 다 비용이고 주변에는 폐가 될 수도 있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이면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이웃을 배려하는 쪽으로 집을 앉혀야 할 텐데 주변에 이미 높게 들어선 집들이 있어 많이 아쉽고도 안타깝다. 오랜 시간 도시생활을 하면서 쌓은 욕심을 그대로들 이곳까지 가져왔나 보다.

 

전체를 평탄하게 고를 게 아니라,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아래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도록 조성하거나 2단으로 만들어 위쪽에 집을 세우는 방법 등 여러 가지를 검토해봐야 할 것 같다.

 

문호리로 나와 박 사장 설명을 들으며 영화배우 이영애 씨 집 등이 있는 동네를 둘러봤다. 대부분 집들이 넓은 터에 크게 지어져 있었다. 박 사장은 구석구석으로 차를 몰며 자연지형을 잘 살린 정원들을 눈여겨보라고 얘기해 줬다. 평지가 아닌 비탈면에 꾸민 정원들인데 참 잘 만들고 가꾼 게 한눈에 보였다.

 

동네 투어를 마치고 돌아 나오니 어느덧 11시 반이 됐다. 토지분할측량을 할 때 박 사장이 입회를 하겠다고 해서 포장도로 쪽까지 경계표시 말뚝을 충분히 박아 달라는 부탁을 하고 서울로 향했다. 강일IC 근처를 지나며 차에 있는 온도계를 보니 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양평과 서울은 온도차가 크다는 걸 다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