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을 꿈꾸다

분할측량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문제가...

주홍완 2020. 1. 11. 15:00

1월 8일(수)

오늘은 토지분할측량을 하는 날이다.

처음 측량 얘기가 나왔을 땐 토목회사 박 사장이 참관하겠다고 해서 나는 가지 않으려 했었다. 그런데 주변의 다른 전문가와 경험자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꼭 현장을 지켜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중 한분은 “경찰이 있으면 차량 운전자들이 주의를 할까요? 안 할까요?”라는 말로 직접 가서 보기를 권했다. 그래서 한해가 막 시작된 1월부터 휴가를 하루 냈다.

 

겨울엔 좀처럼 보기 힘들 정도의 큰비가 그제부터 어제까지 내렸다. 한여름 장마처럼 빗방울이 굵었다. 기온이 낮았더라면 폭설로 내렸을 것이다. 일기예보에서는 오늘까지 사흘간 비가 계속된다고 했다. 이런 빗줄기가 계속되면 측량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다행히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져 가랑비로 바뀌어 있었다.

 

지적공사에서 이틀 전에 오늘 측량을 10:45~11:00 사이에 진행할 거라고 알려온 바 있다. 토목회사 박 사장과 미리 만나 현장에 가보려고 조금 이른 시각인 9시 반쯤 집을 나섰다. 문호리 박 사장 회사에 도착하니 건물 앞에 차는 서 있는데 박 사장이 사무실에 보이질 않았다. 직원들도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전화를 했더니 차 한잔 하면서 잠깐 기다리면 곧 오겠다고 했다. 굳이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나는 먼저 가서 현장을 둘러보고 있을테니 뒤따라오라 하고 바로 출발을 했다.

 

수능리를 지나는데 부동산 양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적공사에서 예정시간보다 일찍 나왔다는데 내게 어디쯤이냐고 물었다. 곧 도착할 거리라고 알려주고는 서둘러 달려갔다.

 

서후리 현장에 도착하니 여전히 내리는 가랑비 속에서 모자나 후드를 둘러 쓴 측량기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차에서 내리니 측량팀의 젊은 분이 다가와 인사를 하곤 안내를 하겠다며 앞장섰다. 등산화로 갈아 신고 그를 따라 나섰다.

 

토지의 맨 아래 도로쪽에 빨간 말뚝이 박혀있는 자리부터 안쪽으로 들어가며 표시된 지점들을 설명했다. 말뚝이 박혀있는 지점들을 둘러보고 위쪽의 도로로 나오니 팀장이 측량기를 놓고 아래쪽과 옆쪽을 재고 있었다.

 

분할측량 작업은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끝났다고 팀장이 말했다. 나는 도로 기준으로 아래 위의 고도차와 네 변의 정확한 길이를 알고 싶다고 했다. 측량팀장은 분할측량에서는 그런 수치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내 수학적 상식으로는 경사지에서 수평면적을 구하려면 당연히 높이(고도차)가 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아니란다. 내심 황당했지만 더 얘기해봐야 소용이 없을 듯 했다. 그때쯤 박 사장과 일행 한 명, 부동산 직원이 도착했다.

 

박 사장 일행도 측량이 이미 끝난 것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원주민과 관련된 땅을 분할하는 것도 아니니 관련자 간에 이해가 날카롭게 엇갈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박 사장은 매도자를 대리해서 나온 것이다. 그렇게 측량은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끝났고, 측량팀은 돌아갔다.

 

박 사장을 만난 김에 개발 전에 윗땅 소유자를 만나 상의를 해봐야 하는 게 아닌지 물어봤다. 각자의 입장만 내세워 따로 개발을 하다보면 이웃에게 피해를 주거나 그로 인해 서로 감정이 상할 일이 생기지나 않을지 염려가 됐기 떄문이다. 박 사장은 “그래야죠”라고 대답했다. 옆에 있는 함께 온 분은 누군지 물었더니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분과 간단히 통성명을 했다.

 

측량팀이 돌아가고 나니 박 사장도 다른 곳에 볼일이 잠깐 있다며 돌아가겠다고 했다. 나는 현장을 조금 더 둘러보고 가겠다고 했다. 박 사장은 잠시 후에 사무실서 보자며 떠났다. 모두 돌아가고 현장엔 나 혼자 남았다.

 

측량팀이 네 지점에 말뚝과 못을 박고 빨간색 래커까지 뿌려놓았으니, 내가 준비해 간 래커는 쓸모가 없게 됐다. 나는 말뚝이 박힌 네 지점을 다시 돌아보며 주변 모습까지를 넣어 다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토목공사 중에 기준점을 잃게 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현장에서 내려와 박 사장 사무실로 갔다. 이번에도 박 사장은 자리에 없어 전화를 했더니 다른 현장에서 일이 아직 안 끝났다며 부동산에서 보자고 했다. 부동산으로 가서 기다리니 잠시 후에 박 사장 일행이 들어왔다.

 

얘기를 시작하고 보니 박 사장과 함께 왔던 분이 바로 윗땅 소유자였다. 현장에서 논의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옆에 서던 바로 그 분이다. 박 사장에게 그 자리서 왜 얘기를 안 했느냐고 했더니 그냥 허허 웃고 만다.

 

그 분은 윤 소장이라고 했다. 박 사장과 얼마전부터 함께 일하기로 했단다. 그는 내가 하겠다는 대로 모든 걸 맞추겠다고 했다. 자신이 토목/건축 공사와 설계까지를 모두 하고 있고 중장비까지 갖고 직접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옆 토지의 진입로를 오늘 측량된 아래쪽이 아닌 위쪽에 내는 게 땅을 가장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땅에 쌓은 축대가 위압적으로 바로 뒤에 붙는 것보다 진입로폭 5m를 두고 떨어지면 훨씬 여유가 있게 되고, 전면도 시각적으로 더 넓어 보일 거라고 했다. 지금 계획대로 아래쪽에 진입로를 만들면 그 아래땅 소유자만 좋게 되고 내가 축대 쌓아야 하는 면적도 커질 거라고 했다. 반면에 위쪽으로 진입로를 내게 되면 내 땅은 살고 자기가 들여야 하는 축대비용이 올라갈 거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그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머리맡으로 도로가 나고 차가 다닌다는 게 우선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윤 소장은 자기는 개발경험이 많고 그에 따른 안목도 있는 편이니 자신의 말대로 하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애초 아랫쪽에 도로를 내기로 했던 것은 측량회사의 권고 때문이었는데, 현장 전문가와 의견이 이렇게 갈린다. 부동산 양 사장도 나서서 얘기를 같이 나눴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좀 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

 

양 사장이 자축할 일이 있다며 점심을 내겠다기에 같이 먹고 나서 양 사장, 윤 소장과 셋이 윤 소장의 살림집과 정배리에 건축 중인 집을 함께 둘러 봤다.

 

오르다온서 내려오는 서후리 계곡 옆에 자리 잡은 윤 소장 집은 단열이 잘 됐는지 보일러가 가동되지 않는데도 아주 따뜻했다. 내벽도 엄청 두꺼웠다. 외부의 소음이나 계곡 물소리는 전혀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 거실서 보이는 작은 폭포는 환상적이었다. 처음에 설계를 전문가에게 맡겼었는데 결과가 맘에 들지 않아 직접 했다고 했다. 공사도 남에게 맡기는 게 미덥지 않아 몇 년째 직접 시나브로 하고 있어 아직도 마무리가 덜 된 상태라고 했다. 외장과 마무리 공사가 끝나면 팔고 새로 장만한 우리 땅 위에 집을 지어 이사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분할측량을 마치자마자 진입도로와 관련해 다른 의견이 나왔으니 생각이 많이 복잡해 진다. 경험이 없다보니 어느 방안이 좋을지 판단은 안 되고 막막할 뿐이다. 부동산 양 사장은 도로 위치를 바꾸게 되더라도 필요한 행정처리는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설 전으로 예정된 잔금일까지 생각을 많이 하고 여러 의견도 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