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토), 노동절 아침이다.
예보에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할 거라고 해서 6시에 눈을 뜨자마자 밖을 내다봤는데 비는 오지 않는다.
며칠 전 수능리에 집을 짓고 있는 친구가 상량식 대신으로 인부들에게 점심을 대접할 계획이라며 오늘 같이 하자는 연락이 왔다. 친구가 짓는 집은 경목구조라 대들보를 올릴 일이 없지만, 거기에 들어갈 비용으로 따뜻하고 푸짐한 식사를 인부들에게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웬만큼 비가 오더라도 오늘은 양평에 꼭 가야 한다.
코로나 염려가 더욱 커지는 요즘이라 주말에 양평을 갈 때는 도시락을 싸갈 참이었다. 동네 김밥집은 8시가 돼야 열리니 그 시각까지 출발을 미루고 기다릴 수가 없어 베이글과 닭다리로 점심도시락을 생각했는데 친구로부터 점심초대를 받은 것이다. 덕분에 아내는 음료와 과일만을 준비했다.
서종면에 있는 식당들은 배달을 하지 않는다. 일을 하다가도 직접 가서 먹거나 한 사람이 식당에 가서 음식을 가져와야 한다. 건축일이라는 것이 대부분 공정에 따라 도급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는데 12시에 일하던 손을 놓고 멀리 있는 식당까지 나가서 따뜻한 밥을 먹고 온다는 게 쉽지 않다.
7시쯤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 1층 현관을 나왔는데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잠시 망설여지긴 했지만 예보에서 간헐적으로 내린다고 했으니 그냥 출발했다.
오늘 아침에도 양수리 종묘상에 들렀다. 지난주에 대파모종을 심었지만 파는 늘 먹는 채소인 만큼 좀 더 여유있게 심는 게 낫겠다고 아내와 의견의 일치를 봐서 또 들른 것이다. 호박모종도 함께 살까 망설이다가 비가 얼마나 어떻게 올지 모르고 기온도 다시 떨어질지 몰라 고추, 오이 등의 다른 열매채소와 함께 다음 주에 심기로 하고 그만 종묘상을 나섰다.
서후리 도착.
지난 중에 심어 놓은 모종들이 모두 잘 살았다. 친구가 주중에 와서 물을 한 번 준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대파모종을 심는 일은 아내가 도맡아 하기로 하고 나는 대추, 복숭아, 사과 등 유실수 묘목 옮겨 심는 일을 시작했다.
유실수 묘목을 한 번에 자리를 제대로 잡아 심는다는 게 영 쉽지 않았다. 전 주에 심었던 것을 옮기고 그걸 다시 옮기는 일을 반복했다. 그런 나를 보고 아내가 놀려 댔다. 하지만 심고 나서 돌아보면 주변 나무와 간격이나 자리 등이 마땅치 않아 보이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대파모종을 모두 심은 아내는 석축의 돌들 틈에 심어놓은 철쭉을 덮고 있는 흙을 호미로 정리해주는 일을 이어갔다.
친구에게서 11시 50분까지 수능리 현장으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아내에게 다양한 유실수까지 심기엔 땅이 너무 좁다고 투덜댔더니 250평이 작다고 하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거라며 또 놀려댄다.
그 때 마침, 큰길에서 접어들어 우리 집터 쪽으로 올라오는 노부부와 눈이 마주쳤다. 먼저 인사를 건넸더니 위쪽에 사는데 지나가다 구경차 들렀노라고 하셨다.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권했다.
그 분들은 20년 전쯤 처음 양평에 내려와 양서면 목왕리에 터를 잡고 살다가 서후리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지는 5년쯤 됐다고 하셨다. 서후리에 들어와서도 오르다온 밑에 자리를 잡았다가 아래쪽으로 내려와 지금 자리에 새로 집을 지은 게 2년쯤 됐다고 했다.
새로 집을 짓기 전까지는 본가가 있는 둔촌동과 오가며 지냈는데 요즘은 서울을 거의 안 간다고도 했다. 이곳 생활이 아주 만족스럽고 부부가 매일 산행을 하며 좋은 이웃들과 어울리는 재미가 워낙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생의 황혼기를 여유롭게 즐기시는 분들로 보였다.
나무와 화초를 심고 가꾸는 방법, 텃밭에 채소를 심어 돌보는 방법 등 전원생활에 필요한 여러 일들을 설명해 주셨다.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비가 오다 그치기를 몇 차례 반복해 그 때마다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해야 했다. 1시간 반가량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졌다. 상의로 홑겹의 등산복만 입은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고 오래 서있자니 추위가 몰려 왔다. 겉으로 표나지 않게 떨고 있는데, 일하는데 더 이상 방해를 해서는 안 되겠다며 노부부께서 발길을 돌리셨다. 길까지 나가 배웅을 한 뒤 얼른 차로 달려가 자켓을 꺼내 입었다. 추위가 조금은 가시는 듯 했다.
다시 일터로 돌아와 묘목을 옮겨 심고 새로 심은 자리에 물을 주는 일을 계속했다. 아내는 그 분들을 따라 집까지 다녀왔나 보다. 한참 후에 와서는 정원을 엄청 잘 꾸며 놨더라며 사진들을 보여줬다. 텃밭도 아래, 위로 크게 만들어 가꾸고 지하 저장고가 일품이라고도 했다.
오전 일을 끝내고 수능리 친구집 공사현장으로 갔다. 음식을 9명분을 싸왔는데 인부들이 비가 온다며 오전에 모두 가버렸다고 했다.
춥고 배가 많이 고프던 차에 맛있는 음식을 대하니 과식을 하게 됐다. 배불리 먹었는데도 음식이 많이 남았다.
집은 지붕을 제외하고 골조공사는 다 된 상태였다. 2층에 올라가 보니 그동안 땅 위에서만 보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남서향 집인데 정면의 벗고개 쪽으로 겹쳐 보이는 산 능선들이 선사하는 풍광이 일품이었다.
친구 부부에게 공사가 잘 진행되는 걸 축하한 뒤 지난해 쓰고 남은 멀칭비닐롤을 받아 서후리로 돌아왔다.
텃밭으로 가서 전 주에 만들어 놓은 두둑을 세 이랑으로 나눴다. 아내가 그 자리에 비닐을 멀칭하고 지난주에 촘촘하게 심어놨던 상추와 쑥갓 등을 솎아 내 옮겨 심었다. 채소 심는 건 아내에게 맡겨 놓고 나는 다시 유실수를 옮겨 심고 물주는 일을 계속했다.
오후 네 시가 가까워지면서 빗줄기가 일을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일을 마무리하고 농기구들을 정리했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오전에 만났던 노부부의 집으로 같이 한번 가보자고 했다. 마침 그 댁 아래서 텃밭에 나와 계시는 노부부를 만났다. 집구경좀 하러 왔다고 하니 기꺼이 안내를 해주셨다.
정성을 많이 들인 흔적이 정원 곳곳에 역력했다. 대문을 옆에는 작은 언덕을 만들어 화초들을 심고 그 사이에 눈향나무를 배치했는데 아주 오밀조밀하고 예뻤다. 2단으로 조성된 터의 위쪽 밭에는 옥수수를 많이 심어 놓았다. 축대로 둘러싸여 있어 멧돼지나 고라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집 안에 들어가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권하시는데, 옷에 흙이 많이 묻은 데다 코로나 시국에 실내로 들어간다는 게 부담스러워 극구 사양을 하고는 나왔다.
그 분들은 비가 내리는데도 다시 산책을 하겠다며 우리와 같이 집을 나섰다.
좋은 분들을 이웃으로 만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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