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을 꿈꾸다

태양은 이글거렸지만 그늘에서 본 하늘은 아름답더라

주홍완 2021. 7. 20. 15:43

7월 17일(토)

며칠 째 이어지는 폭염과 열대야로 낮엔 물론이고 밤에 잘 때도 에어컨을 돌려야만 하는 요즘이다.

 

뙤약볕을 피하기 위해 아침 6시 반에 집을 나섰는데 양양고속도로와 팔당대교 진입램프는 정체가 벌써 시작돼 있었다. 다른 주말과 비교하면 1시간 정도 늦은 시각의 혼잡상황과 비슷했다. 서울과 수도권에 코로나 방역 4단계 조치가 시행된다고 하니 모두들 새벽부터 강원도 쪽으로 내려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서후리 도착해 텃밭을 보니 큰 고추들이 제법 많이 달려 있고 수박도 1주일 전에 비해 꽤 자란 듯 했다. 커다란 애호박들 무게에 밑으로 처진 호박 줄기는 게으른 농부를 탓하는 듯 했다. 방울토마토는 익은 게 별로 없었다. 잠실 한강공원의 농사체험장에 있는 것들도 그렇던데 노지 토마토는 익는 속도가 왜 이리 더딘지 모르겠다. 아내가 오이 몇 개는 노각을 만들겠다며 따지 말라고 했다. 상추는 한 주 정도만 지나면 완전 끝물일 듯 했다.

고추

 

작은애 팔뚝과 애호박

 

방울토마토

 

수박

 

오이

군데군데 피어 있는 호박 수꽃 마다엔 벌들이 분주했다. 꿀을 얻는 과정에서 발에 꽃가루를 묻히고는 암꽃으로 날아갈 것이다. 유튜브를 보니 호박은 자연 꽃가루받이가 잘 되지 않는다며 인공수분 방법을 설명들 했다. 꽃가루받이가 되지 않으면 호박 모양이 예쁘지 않거나 자라지 못하고 떨어진다던데, 우리 텃밭에서는 그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맷돌호박도 많이 달렸다.

 

호박꽃 속의 벌들

  지난주에 깜박 잊고 두고 갔던 깻잎과 고추를 담은 비닐봉지에서는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한 주일 내내 아깝다며 미련을 두었던 아내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차더니 다시 고추와 깻잎을 딴다며 울타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호박과 오이를 따고 수박과 맷돌호박 순지르기를 한 뒤 풀 뽑는 일을 했다. 진입로 쪽 석축 사이와 보강토블럭 축대 위에 심어 놓은 철쭉들 틈에서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이 아주 볼썽사나웠다. 한 주 전만 해도 잡초들이 눈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는데 장마를 지나면서 엄청나게 커버린 탓이었다.

 

바랭이 같은 풀들은 얼마나 포기도 벌어지고 컸는지 두 손으로 뽑아야 하거나 심지어 괭이를 써야만 하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10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땀이 비 오듯 했다. 밀짚모자로 머리 쪽에 오는 볕은 가렸지만 등에 쏟아지는 햇볕은 불길이 닿은 듯 열기가 느껴졌다.

 

무더위에 갈증까지 더해지니 일을 계속 하기 어려웠다. 텃밭 일을 막 끝낸 아내와 잠시 단풍나무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볕을 가리니 더위가 가시고 시원해지기까지 했다. 양산으로 그늘을 넓히니 사정은 더욱 나아졌다. 그런 상태에서 바라본 하늘은 참 맑았다. 같은 볕, 같은 하늘인데도 그늘에서 보는 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무더위가 시작되기 이전의 상쾌함까지 느껴졌다.

 

휴식을 끝낸 뒤 아내의 도움으로 눈에 띄게 거슬리던 풀들은 어느 정도 뽑았다. 풀들은 뿌리에 흙이 조금만 붙어 있어도 생명을 이어가기 때문에 꼼꼼히 흙을 털어 낸 다음 다른 풀들이 올라오는 것도 막고 거름도 되라고 소나무 밑에 깔아 두었다.

 

아내가 골프 칠 때 쓰는 레이저 거리측정기로 맨 위 3단부에서 집을 앉힐 자리의 거리를 쟀다. 가로 18m, 세로 14m, 평수로 치면 76평이다. 서울에서는 집을 짓고 정원까지 꾸며도 작지 않은 면적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 눈엔 맨땅이라 그런지 너무 작아 보여 아래의 2단 텃밭부지를 조금 좁힐 걸 그랬나 하는 염려가 들기도 했다. 그래서 굳이 재 본 것이다. 수치로 확인하니 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듯 했다. 어떻게 설계를 하느냐가 문제리라.

 

나무 그늘 아래서 아침에 집 앞에서 산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수능리 친구에게 고추와 호박 등을 전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중에 윤 소장에게 전화해 위쪽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이 집터로 들어와서는 안 되니 안쪽 진입로는 집터보다 높지 않게 낮춰달라고 요청을 했다. 윤 소장은 도로 부지에 있는 암반이 너무 크고 단단해서 웬만한 장비로는 안 될 것 같다며 나중에 공사를 재개하면 10장비(대형 굴삭기)로 한번 해보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