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17일) 저녁, 에어컨이 고장났다. 그날 낮에만 해도 시원한 바람을 잘 내뿜던 에어컨이 저녁이 되면서 냉기는 빠진 더운 바람만 토해냈다. 엄청난 폭염이 시작된다는데...
월요일, 출근한 아내가 LG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했지만 전화연결조차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접속해 챗봇으로 고장접수를 하고나서 받은 수리기사 내방 일자가 28일이었다. 앞으로 열흘간을 에어컨 없이 버텨내야 한다는 얘기다. 코로나방역 4단계에 회사에 첫 확진자가 생기면서 전원 재택근무에 들어가게 됐으니 집에서 꼼짝 못하고 더위를 견딜 수밖에 없게 됐다.
유례를 찾기 힘든 폭염이 지속될 거라는 기상청 예보는 불행하게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월요일 정오 무렵이 되자 기온은 35도까지 올랐다, 앞뒤로 모든 문을 활짝 열어 놓았지만 집안은 끓는 가마솥 안처럼 뜨거워졌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열풍이었다. 40도를 가볍게 넘기던 한여름의 라스베가스가 떠올랐다. 라스베가스에서도 숨 쉬는 것조차 불편할 정도였는데 지금의 우리집이 그렇게 됐다. 선풍기를 3단으로 틀어 몸 쪽으로 고정시켰지만 더위를 누그러뜨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온몸은 땀으로 끈적거렸다.
혼자 집에 있는 내가 걱정이 됐는지 아내와 아이들이 카페라도 가서 더위를 피해 있으라고 권했다. 하지만, 집 주변에 개(우리)와 함께 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가 없었다. 석촌호수 건너편에 애견동반 카페가 하나 있다고 큰애가 알려왔는데 이런 폭염에는 거기까지 다녀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단념을 했다.
축 늘어져 있는 개에게 샤워를 시키고 얼음팩을 수건에 싸서 대줬다. 달아오른 실내 온도를 조금이나마 낮춰보겠다고 물을 많이 적신 걸레도 닦아도 봤다. 복도엔 연신 물을 뿌려댔다. 하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는 듯 했다.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서는 모든 시도가 새발의 피였다.
눈에 띄는 효과는 없었지만, 정신승리를 추구하면서 매일 이런 패턴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그동안 한낮 기온은 계속 35~37도 사이를 오갔다. 이틀 정도 지나자 몸은 약간 적응을 하는 듯 했지만 기가 점점 빨려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화요일부터 재택근무에 들어간 둘째는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인 듯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토요일엔 양평에 다녀왔다. 폭염 속에서도 농작물들은 잘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10시쯤 햇볕이 강렬해지자 호박잎들이 일제히 축 늘어졌다. 아마 수분증발을 줄이려는 자구책일 터였다. 커다란 맷돌호박과 애호박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수박도 제법 많이 컸는데, 다음주 쯤되면 다 익을지 모르겠다.
블루베리는 흙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충분히 자주 줘야 한다는 유튜브 선생님들 말씀에 따라 호스를 피트모스층에 꽂고 물을 충분히 준 다음 멀칭용으로 솔잎을 긁어다 두툼하게 덮어 줬다.
숲속 그늘에 가서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와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모기, 개미 등 온갖 벌레들이 달려들었지만 숲에서 맞는 바람의 청량감은 푹푹 찌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해먹을 사다 나무에 매달아 놓으면 좀 더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쓰는 25일, 수리기사가 오려면 아직 3일을 더 버텨야 한다. 그런데 28일에 기사가 와서도 수리가 바로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여전히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일본을 행해 가고 있다는 태풍이 한반도 상공에 머물러 있는 열덩어리를 몰아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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