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토) 넘어간 양평의 공기는 전날까지의 서울과 달랐다.
등에 내리쬐는 햇볕이 여전히 화살이 꽂히는 것처럼 따갑고 아프기까지 했지만, 때때로 몸을 휘감고 지나가는 바람엔 시원함이 묻어 있었다. 비처럼 흐르던 땀도 그런 바람 앞에서는 잠시 내리길 멈췄다. 구름이 잠깐씩 해를 가리고 그에 맞춰 바람까지 불어주면 상쾌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1주일 내내 폭염에 시달린 몸이라 작은 온도 차이도 크게 느껴는 면이 아마도 있을 것이다.
이런 바람을 만나니 오래 전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는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이었다. 한여름이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만큼 시원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여름방학이면 툇마루에서 뒹굴며 시원한 바람을 기다리곤 했다. 나무잎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바람이 숲에 이른 것이었다. 바람은 그렇게 나무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나서 내가 기다리는 사랑채 툇마루로 달려오곤 했다.
전 주와 마찬가지로 아내는 농작물을 수확하고 나는 풀을 뽑았다.
상추는 이번 수확이 마지막이 될 듯 했다. 고추와 호박은 제법 많은 양을 땄다. 오이와 맷돌호박 여러 개는 노랗게 늙어간다. 방울토마토도 제법 많이 익었다. 수박은 모두 네 통이 열렸는데 가장 큰 게 앞으로 일주일 정도면 익을 것 같다. 다음 주엔 부산을 다녀와야 하니 따려면 2주 후를 기약해야 한다.
곁가지만 뻗고 열매를 맺지 못한 수박줄기와 마구 엉켜있는 호박줄기를 정리했다. 블루베리에는 물을 듬뿍 줬다. 터 전체에서 눈에 띄는 큰 풀들은 거의 뽑아 소나무와 공작단풍나무 아래 깔아 줬다. 이 풀들은 새 풀들이 나는 걸 막아 주고 나무에 거름도 될 것이다.
*****
에어컨이 7월 29일에야 수리 됐다. 고장난지 12일 만이었다.
기상청 발표 전국 낮 최고 기온이 35~37도에 머물며 폭염을 선사했던 바로 그 시기를 선풍기 만으로 버텨냈다. 정말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중이라 어디 피해 있을 곳도 없었다. 수일째 계속 달아오른 콘크리트 건물의 한낮 실내 온도는 아마 40도에 근접했을 것이다.
에어컨이 고장난 지 열 하루째 되는 날 수리기사가 왔지만 그냥 돌아갔다. 실외기를 열어 본 그는 각 장치에 전기를 나눠주는 부속품 하나가 타버렸다며 회사에 들어가 재고를 파악해 봐야 한다고 했다. 고장수리를 신청한 뒤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기다렸는데... 내일 꼭 해주겠다는 기약도 없었다. 기가 막힐 지경이었지만 수리기사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수리를 받으려면 최소 2주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AS 신청이 밀렸다니 그는 얼마나 많은 현장으로 바삐 뛰어다녔을까? 그저 빨리 처리해 달라고 사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다시 온 수리기사가 부속품을 교체하는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한 고장인데도 온 가족이 2주 가까이 유황불 지옥을 경험했다. 이렇게 에어컨 전기료를 아끼게 됐으니 올 여름은 운수대통했다~~
에어컨을 고치고 나니 바로 폭염이 한풀 꺽였나 보다. 선풍기 만으로도 그럭저럭 견딜 수 있게 됐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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