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두 달여 만에 양평길에 나섰다.
출발하며 본 자동차의 외기 온도계는 8.5도였는데 팔당대교를 건널 무렵부터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시간 가까이 지나 서후리에 도착하니 1.5도를 가리킨다. 7도나 차이가 났다. 해가 이미 떠오른 시각인데도 그러니 같은 시간대로 비교하면 서울과 서후리의 온도차는 훨씬 커질 것 같다.
차에서 내리는데 찬 기운이 확 몰려 왔다. 순간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온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될 정도의 날씨였다. 입에서 나온 하얀 김이 찬 공기 속으로 퍼지다 이내 사라졌다. 주변 집들의 지붕은 온통 허연 서리모자를 쓰고 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동네가 여태 조용하다. 개들도 추위 때문에 집에서 나오질 않았는지 늘 들리던 짖는 소리도 없다.
터를 미처 둘러보기도 전에 수능리 사는 친구가 부직포 롤을 들고 건너 왔다. 과수와 조경수들에 비닐로 멀칭해 놓은 것을 부직포로 바꾸라고 가져온 것이다. 서울보다 크게 낮은 기온 얘기를 했더니 조금 전 새벽엔 영하였던 게 영상으로 오른 것이라고 했다.
비어 있던 아랫터엔 그새 집이 들어서 있다. 농막형 조립식 주택으로 보였다. 지하수도 뚫었고 정화조도 설치한 걸 보니 건축허가를 제대로 받고 진행했나 보다. 친구와 축대 위에서 집 구경을 하고 있는데 우리 또래로 보이는 주인이 나왔다. 인사를 먼저 청했다. 주말주택으로 사용하기 위해 땅을 사서 지었다고 했다.
전에 예전 땅주인은 400평 대지를 둘로 나눠 하나는 본인 명의로, 하나는 아들 명의로 해뒀다고 했다. 본인 명의 땅에는 1년 전에 핀란드식 목조주택을 지어 세를 줬다고 했는데 이번에 아들 명의 땅을 팔았나 보다. 내가 땅을 처음 마련했을 때 설렘과 기대를 아랫집 사람들로 그대로 느끼는 것 같다. 부부에 자녀들까지 이른 시각에 달려들 와서 김장을 하려는지 배추를 씻고 절이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가을걷이를 온전히 끝내지 못한 텃밭엔 고추들이 선 채로 죽어 말라가고 있었다. 대파는 말라버린 겉닢 속에 홀쭉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너무 춥다고 아우성 치는 듯했다. 전에 와서 꼭지를 딴 다음 바위 위에 올려 놓았던 늙은 호박은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들어서 두드려 보니 안이 온전치 못한 것 같았다. 석축 중간까지 내려와 몸집을 키운 호박 두 개가 미처 늙기도 전에 줄기가 말라버렸기 때문인지 여전히 푸른 색을 띤 채로 바싹 마른 줄기에 매달려 있다. 텃밭 한켠의 부추만이 파란 줄기를 바람에 휘날리며 추위에 맞서고 있다.
볼 일이 있다는 친구가 돌아가고 나서 일을 시작할 채비를 했다.
오늘 할 일은 텃밭을 정리하고 나무들에 퇴비를 준 다음 추위에 약하다는 감나무 두 그루를 버블(뽁뽁이)로 싸주는 것이다.
내년 봄에 건축을 시작할 계획이니 고라니막이용 울타리는 이번 참에 완전히 걷어 내기로 했다. 지주를 모두 뽑고 그물을 정리한 다음 고추와 토마토, 가지 등에 세웠던 지주와 줄까지 모두 제거했다. 추위에 생을 다한 고춧대도 모두 뽑아 치웠다. 멀칭용을 썼던 검은 비닐까지 걷어 냈다. 대파와 부추는 그대로 겨울을 나도록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그대로 뒀다.
지주들을 길이별로 구분해 끈으로 묶었다. 지주에 줄기를 묶느데 썼던 나일론 줄까지 모두 정리를 했다.
지난 봄에 받아놓은 퇴비지만 포대를 뜯으니 냄새가 많이 났다. 비닐 속이라 부숙이 충분히 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이런 퇴비를 뿌리고 흙으로 바로 덮으면 가스 때문에 나무 뿌리가 화를 입을 듯해 오늘은 그냥 땅위에 뿌려주는 걸로 끝내기로 했다. 2주쯤 후에 와서 흙으로 덮어줄 요량인데 그때쯤엔 땅이 얼지 않을지 모르겠다.
대추, 복숭아, 체리 , 블루베리 나무들에 멀칭용으로 깔아 뒀던 비닐들을 모두 걷어 내고 퇴비를 뿌려 줬다. 블루베리엔 세 그루당 1포대, 대추와 체리, 복숭아엔 두 그루당 1포대씩, 묘목으로 심어 놓은 향나무, 에메랄드그린 등에도 퇴비를 뿌려 줬다.
퇴비포대는 재활용 가능한 비닐이지만, 포대 안에 붙어 있는 찌꺼기들 때문에 그대로 재활용 쓰레기로 버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 멀칭용으로 썼던 검은 비닐도 흙투성이라 그대로 버릴 수 없는 상태였다.
수도를 틀어 통에 물을 받은 다음 포대는 씻고 비닐은 헹궜다. 한두 번에 되질 않아 한 뭉치당 네 번씩은 헹궈야 했다. 씻고 헹구는 데만 두 시간 넘게 걸렸다. 반팔 차림으로 일을 해야 할 만큼 땀이 솟았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비닐 세척작업을 끝내고 나니 어느덧 1시가 다 됐다. 추석때 얼려 놓았던 송편 한 봉지와 둘째가 삶아준 반숙계란 두 개, 귤 한 개로 점심을 때우고 나니 온몸이 노곤해 졌다.
의자에 앉아 바라본 하늘에는 조금 전까지 물결처럼 수를 놓고 있던 구름들이 빠르게 흩어지며 사라져 간다. 땅위엔 바람 한점 없어 등에 내리쬐는 햇볕이 이리도 따스한데, 저 위엔 몹시도 센 바람이 불고 있는지 구름으로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 한다. 구름이 물러가자 하늘이 파랗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파란 하늘은 언제 봐도 예쁘다. 펄쩍 뛰어 그속으로 들어가면 헤엄칠 수 있을까? 동심처럼 상상이 나래를 편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자니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몸에 힘이 빠졌다. 그런데 아직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남아 있다. 감나무 줄기를 버블로 싸주는 일이다. 감나무는 추위에 약해 그대로 두면 언다는 게 이곳에 사는 선배 정착민들의 조언이다.
아내에게 전화로 파를 상태를 얘기하고 어찌하는 게 좋을지 물었더니 모두 뽑아 오라는 명령이다. 그냥 둬야 얼어서 소용이 없을테니 딴 생각 말고 다 거둬오란다. 모두 뽑아보니 서너 웅큼 정도 됐다. 추위가 시작되기 전엔 제법 굵직하던 게 살이 빠져 그렇게 됐다. 집에 가서 다듬으면 쓰레기가 되고 여기서 다듬으면 거름이 될테니 여기서 손질을 끝내 백에 담았다.
일을 끝내니 더욱 큰 피로가 몰려 왔다. 오랜만에 몸 쓰는 일을 해서 그런가 보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운전석에 앉았는데 해진 뒤 어둠이 성큼성큼 몰려오듯 피로감이 빠르게 들어와 내 몸을 가라 앉힌다. 눈꺼풀은 땅을 향해 무겁게 떨어져 내렸다.
아직 길이 아직 막히지는 않을테니 서둘러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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