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을 꿈꾸다

텃밭농사 - 우중에 고추, 호박, 수박모를 심었다

주홍완 2023. 5. 6. 15:53

5월 5일(금)

새벽녘, 창밖 난간에 맺혔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침대맡으로 아주 약하게 들려온다. 비가 내리긴 하지만 많이 오는 건 아닌 듯 했다.

 

주변을 더듬어 핸드폰과 안경을 찾았다. 화면빛에 부신 눈을 찡그린 채 날씨정보를 검색했다. 서울 강수확률이 80%대로 나온다. 서종면의 강수확률은 40%대다. 어제 저녁에는 서울과 양평의 오늘 강수확률이 모두 100%였다.

 

거실로 나와 커튼을 걷고 밖을 보니 빗줄기는 보슬비 정도로 많이 가늘었다. 강수확률이 80%대인데 보슬비 정도 내린다면 그 절반인 서종면은 비가 안 내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거기에 이번 주말 연휴에 고추와 호박모를 심어야 하는데 이 정도 비라면 오히려 오늘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심어 놓은 상추도 첫 수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다. 아내도 기꺼이 가겠다고 나섰다.

 

양수리 종묘상에 들러 일반고추, 아삭이고추, 청양고추, 호박, 수박모 조금씩과 땅위에 노출돼 있는 수도관을 햇빛으로부터 가려줄 갑바를 한 개 샀다.

 

서울서 팔당을 지날 때까지는 빗줄기가 굵어졌다 가늘어졌다를 반복했는데 팔당터널을 벗어나 양수리까지는 이슬비가 내렸다. 목왕리를 지나 벗고개를 넘으니 날씨는 흐린 채였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서후리 집터 입구의 석축에 심어 놓은 철쭉들에 흰색, 빨간색, 분홍색 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3주 만에 찾았다고 화려한 꽃을 피워 반갑게 맞는 듯 했다. 새로 조성한 터에 옮겨 심은 공작단풍들도 각각의 붉은색과 푸른색 잎사귀들에 영롱한 물방울들을 보석처럼 알알이 머금은 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체리, 사과 나무들도 뿌리를 잘 내렸는지 새순을 힘차게 내뻗고 있다. 반면에 대추, 감 나무들은 아직 겨울잠에서 덜 깼는지 헐벗은 가지에 녹색옷을 미처 입히지 못했다. 묘목으로 심어 2년차에 접어든 에메랄드그린 등도 뿌리를 잘 내린 것 같았다. 옮겨 심었는데도 이렇게 빨리 자리를 잡은 것은 아무래도 올봄엔 비가 적당한 양으로 자주 내렸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부터는 너희들 세상이야. 힘껏 자라렴~~

 

석축 사이에 예쁘게 핀 철쭉들. 지하수 관정서 집이 들어설 곳으로 끌어 놓은 수도관의 노출된 부분을 갑바로 덮어 줬다.

 

푸른 옷으로 갈아 입은 공작단풍이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텃밭에 내려가 보니 상추는 생각만큼 자라지 못했다. 뜯을 수 있을 거라고 큰 봉투를 준비했는데 아주 헛일이 돼 버렸다. 아스파라거스, 대파, 부추 등도 잘 살아 있기는 했는데 별로 크질 못했다. 비닐 멀칭을 해주지 않은 것이 여러 원인 중의 하나일 것 같다. 멀칭은 식물의 생장에 중요한 보습과 보온에 크게 도움을 주는데, 올봄은 자주 내린 봄비로 보습엔 문제가 없었지만 서후리의 찬 기온에 그대로 노출돼 기대만큼 자라지 못한 것 같다. 반면에 잡초들은 벌써 무성하게 자라났다. 반갑지 않은 잡초들의 질기고 왕성한 생명력이라니...

 

상추와 겨자채 등은 기대만큼 자라지 못했다. 법면으로 흙이 쓸리는 걸 막으려고 줄로 심은 잔디는 잘 뿌리를 내리고...

보강토블럭 축대의 법면에 심어 놓은 철쭉과 꽃잔디도 예쁘게 꽃을 피웠다. 꽃잔디들이 잘 번식되면 비가 내릴 때마다 일어나는 흙쓸림 문제를 충분히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축대위 법면에 심은 꽃잔디가 색색이 꽃을 예쁘게 피웠다.

고추 심을 이랑을 만들기 위해 삽질을 시작했다. 비 때문에 땅 윗부분이 어느 정도 물러져 있었지만 그 깊이는 수cm에 불과해 그 아래는 여전히 삽이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겉옷을 벗어 제쳤는데도 땀이 빗물처럼 흘러 내렸다. 혼자서는 들 수 없을 정도 크기의 바위까지 캐내다 보니 힘은 힘대로 들고 시간도 많이 지체됐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며 바람까지 휘몰아쳤다. 아내는 우산을 펴 든 채 잡초를 뽑고, 나는 밀짚모자로 머리만 가린 채 삽질을 이어갔다.

 

땅을 일구고 모종을 심고, 잡초를 뽑고 갑바로 노출 수도관을 덮어주는 일까지 아내와 함께 세 시간 반에 걸쳐 오늘 일을 끝냈다. 삽질하는 내 모습이 힘겨워 보여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며 쉬지 않고 일을 이어간 아내도 일을 끝낼 무렵엔 기진맥진해졌다.

 

고추모

 

호박모

이 일을 즐기는 나야 힘들어도 재미가 있어 한다지만, 아내까지 힘들게 만드니 영 미안한 마음이다. 나 혼자서 쉬엄쉬엄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얼른 집을 지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