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을 꿈꾸다

부족한 흙을 어떻게 구할까?

주홍완 2023. 4. 19. 15:19

4월 14일(금)

퇴직하고 나니 아내가 올라오지 않는 주엔 양평을 가는 날을 굳이 주말로 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게다가 다음 주 월요일 부산에 내려가 2주가량 머물 계획이라 이번엔 도로가 덜 붐비는 평일을 택해 양평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래서 수능리 친구와 오늘로 날짜를 맞췄다. 

 

지난번에 석축을 새로 쌓으면서 돌 사이사이에 영산홍과 자산홍, 백철쭉을 섞어 심었다. 같은 시기에 꽃이 피니 세 가지 색깔이 어우러지면 아름답다. 하지만 사계절로 넓혀보면 꽃이 없는 시기엔 풍경이 지나치게 단조롭고, 특히 겨울철엔 앙상한 가지만 남는 것이 보기에 별로 안 좋다. 그래서 군데군데 회양목과 주목을 추가로 심기로 했다.

 

우선 팔당터널을 지나면 오른쪽 길가서 만나게 되는 솔바위농원에 들러 회양목을 두 다발 사고 양수리 종묘상에서 아스파라거스와 부추 모종을 조금 샀다.

 

며칠간 서종면 날씨를 지켜봤는데 서후리는 오늘 아침까지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것 같았다.

 

텃밭을 먼저 둘러보니, 상추와 겨자채 등은 뿌리를 어느 정도 내렸는지 제법 활기가 돌았다. 대파는 허리를 푹 꺽은 채 심을 때 모양 그대로 아직도 땅에 고개를 박고 있다. 날씨가 좀 더 풀리면 기운을 차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함께 심었던 들깨모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꽃샘추위에 아예 녹아 없어진 듯했다. 인터넷에 들깨는 내한성이 강하다고 나오는데 어린 모종일 때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상추와 대파

 

들깨모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새로 가져간 모종을 심을 이랑을 만들어야 했다. 지난 3년간 바람과 비, 사람 발길에 충실히 다져졌기 때문인지 삽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땅이 단단했다. 삽을 한 번 박아 넣을 때마다 걸려나오는 돌들로 흙파기는 더욱 힘들었다. 고작 2m 정도 길이의 이랑 세 개를 만드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른 아침이라 선선했지만 얼마나 힘을 썼는지 옷이 땀으로 젖고 다리는 후들거릴 정도였다.

 

오늘 심은 부추모

 

아스파라거스

모종을 다 심고 나서 체리와 대추, 사과 등 유실수와 에메랄드그린, 히버니카, 향나무 등 조경수를 집터 쪽으로 옮겨 심는 작업을 하는 참에 수능리 친구가 도착했다. 일산 본가서 출발해 달려온 것이다.

 

친구와 함께 석축 사이에 회양목과 주목을 심고 물을 줬다. 집터로 옮겨 심은 유실수와 조경수엔 한그루 한그루마다 물을 잔뜩 넣어 뿌리 주변 흙을 곤죽을 만든 다음 부직포로 멀칭까지 해줬다.

 

철쭉 사이에 심은 회양목

 

뒷땅과의 경계선을 따라 에메랄드그린을 옮겨 심고 부직포로 멀칭까지 해줬다.

 

앞쪽 석축위에도 에메랄드그린과 히버니카, 대추나무를 옮겨 심었다.

 

대문자리가 될 옆엔 향나무를 옮겨 심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서후리 골짜기엔 친구와 내가 나누는 얘기와 삽질소리 만이 울려 퍼졌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들 말소리에 화음을 더하는 듯했다. 이곳의 평일 오전 고요를 깨뜨리고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목소리를 낮추고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 며칠전 굴삭기 두 대를 투입해 엄청난 소음을 내며 석축을 쌓을 때도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는데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조금만 주의하는 것만으로도 주민들의 평온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옮겨 심느라 가지를 다 잘라낸 사과나무에도 새순이 돋았다.

 

체리나무에도 새순은 돋아나고~~

 

1차 텃밭 작업 끝. 5월초에 주변을 더 일궈 고추, 호박, 참외, 수박 등 열매채소를 심을 계획이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공작단풍나무 꼭대기에 돋은 대목순을 톱으로 잘라주는 것으로 오늘 일을 모두 마쳤다.

 

일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다. 근처 식당들은 공사장 인부들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때를 넘기면 밥을 먹기가 쉽지 않아 수능리 친구집으로 가서 친구가 차려준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퇴직 1년 반차에 접어든 친구의 음식솜씨는 이미 요리사 경지에 올라 있었다.

 

지난번 토목공사에서 흙이 부족해 평탄화 작업을 깔끔이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라, 수능리서 산을 밀어 택지조성공사를 하고 있는 분께 친구를 통해 흙을 부탁했다.

 

친구가 전화를 하자 집으로 직접 찾아온 그 분은 황토, 마사토, 잡석이 섞인 것이든 원하는 흙을 얼마든지 주겠다고 했다. 다만 운반 트럭은 내가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15톤 덤프트럭 기사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수능리 현장서 한 차를 싣고 서후리에 부리고 돌아오는데 40분은 잡아야 한다고 했다. 덤프트럭 일대는 하루 65만 원, 통상 하루 8시간 일을 하니 최대 12차 정도를 들일 수 있게 된다. 거기에 굴삭기를 들여 흙을 펴고 다지는 일을 해야 하고, 트럭이 수능리 동네길을 나갈 때는 먼지 민원이 일지 않도록 물차로 살수까지 해야 한다.

 

부족한 흙은 10차 정도니 덤프트럭을 하루만 빌리면 되겠지만 이런저런 비용을 더하면 100만 원이 훌쩍 넘게 된다.

 

윤 소장에게 전화로 물어봤더니 자기가 해줄테니 불필요하게 많은 돈을 들이지 말라고 했다. 9월에 기초공사를 시작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해줄 수 있는지 확답을 받고 흙을 따로 받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멀리서 달려와 준 친구 덕분에 오늘 일도 잘 마칠 수 있었다. 늘 고마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