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뉴욕으로 출발하기 전에 미리 예약한 뉴욕 시내 그룹투어 버스를 테너플라이에 있는 한아름마트앞 주차장에서 8시에 타기로 돼 있었다.
20분 정도 일찍 그 곳에 도착했더니 이미 여러 대의 버스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있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뉴욕 일일투어가 꽤나 많은 모양이다.
차에 올라보니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만원이다. 차안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관광객들은 한국에서 여행사를 통해 온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앞서 나이애가라 등 동부관광을 마치고 마지막 코스로 뉴욕을 둘러보기 위해 나섰나 보다. 대부분이 노인들이었는데 간혹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고 일본 여성도 몇 명 보였다. 우리가 들어간 일일투어는 1인당 65달러씩에 점심식사까지 포함된 것이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이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었다. 가이드가 먼저 가서 입장권을 끊어와 나눠주고는 각자 올라갔다가 오라고 했다. 매표소 앞에는 표를 사려는 사람들로 이미 긴 줄이 이어져 있었지만 가이드의 재빠른 동작 덕분에 우리는 옆으로 해서 바로 올라갈 수가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갔더니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때린다. 한 바퀴 돌아보기는 했지만 안을 들락거리면서 언 몸을 녹이느라 아이들과 함께 부산을 떨어야 했다.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전망대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서 CD를 내민다. 우리가 올라갈 때 찍은 사진을 CD에 담아 놓고는 돈을 내고 사라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정확히 사진의 주인공들을 가려낸다는 것이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라 사지는 않았지만....
다음으로 자유여신상을 둘러보러 갔다. 이동하는 중에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오른쪽으로 두 블럭을 가면 그라운드 제로가 있다고 설명을 한다. 그라운드 제로 정도는 직접 옆에 가서 눈으로 봐야 지 무슨 이런 황당한 관광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손으로 방향만 가리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되서 가이드한테 직접 가보자고 했더니 그렇게 하면 오늘 해 안에 맨하탄을 둘러볼 수 없대나 뭐래나...
지금은 물론 한창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아이들에게 아픈 역사의 현장을 꼭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데 이렇게 되고 보니 오늘 그룹투어에 괜히 들어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의 여신상 관광은 쾌속 유람선을 타고 섬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었다. 섬에 올라가서 천천히 둘러도 보면서 여유있게 관광을 즐길 것으로 기대했는데 어째 갈수록 실망이다.
추운 날씨에 쾌속선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둘러보자니 온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예약 전에 인터넷으로 관광 일정을 검색해 보고는 그 정도면 뉴욕 관광에 부족함이 없겠다 싶어 신청을 한 것인데 실상은 겉핥기도 안 되는 것이었다.
3년 전에 출장을 왔을 때는 남는 시간을 이용해 걷기도 하고 택시도 타고 하면서 시내 이곳저곳을 찬찬히 둘러봤었다. 나중에 가족과 함께 와서 재미있게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의 이 관광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이 그저 가이드 뒤만 따라 다녀야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자 가이드가 자유 시간을 한 시간 준다면서 인근 백화점으로 쇼핑 안내를 한다. 시간이 없어서 정작 들러야 할 곳도 그냥 넘어간다고 하더니 백화점 쇼핑이라니...
짜증이 났지만, 투어 내용을 사전에 꼼꼼히 챙기지 못한 내 불찰도 있으니 이제 와서 어떻게 하랴. 가이드도 그래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이후 들른 곳이 유엔본부.
9.11 이후에 부쩍 심해졌다는 보안검색 때문에 대기줄이 몇 십 미터도 넘어 보인다. 반기문 사무총장 생각도 하면서 내심 우쭐한 기분으로 맨 뒤에 가서 줄을 섰는데 같은 관광버스를 타고 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뒤늦게 온 일행들을 자기 앞으로 마구 끼워 넣는다. 처음엔 한 두 명이니까 하고 봐 넘겼는데 계속 그러니까 뒤에 서있던 다른 외국인들이 뚫어져라 쳐다본다.
얼굴이 화끈거려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줄에 서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습니까? 중국인들이 해외에 나가서 무질서다고 욕하는데 그들과 다를 게 없잖아요?" 했더니 일행이라서 그런다는 한 마디 말로 끝낸다. 전혀 미안하다거나 창피해 하는 기색도 없다. 나만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성 요한 성당.
아직 공사 중인 곳이 있어 조금은 어수선했지만, 규모면에서 우선 대단해 보였다. 2001년 화재로 그을린 부분이 아직도 일부 남아 있었다. 내부에 들어서니 깊은 지하처럼 서늘하고 습한 느낌이 진하게 묻어났다.
가이드가 이곳에서의 체류시간을 너무 길게 잡는 바람에 구경을 끝내고는 밖으로 나와 길 건너편에 있는 컬럼비아대학으로 갔다.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8개 대학중 하나라는 이 대학은 예정된 코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입구에서 캠퍼스 전경을 먼발치로 둘러보고는 사진만 한 장 찍고 나왔다.
버스에 올라타니 센트럴파크를 돌아 나가는 것으로 맨하탄 관광을 마친다고 가이드가 방송을 했다. 샌트럴파크는 뉴욕하면 떠올리게 되는 상징적인 곳인데 내려서 조금이라도 걸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했더니, 가이드는 시간도 그렇고 차를 세울 곳이 없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게 무슨 관광이냐고 재차 따졌더니 가이드가 미안하다면서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어쩔 수가 없단다. 어디 그 사람이 책임질 일이겠는가? 그저 일당 받고 하는 일일텐데....
이대로 돌아간다면 아이들이 뉴욕에 대해 과연 어떤 추억을 새길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안되겠다 싶었다. 가이드에게 5th Ave.에서 내려 달라고 했다. 테너플라이의 와이프 친구집까지는 버스를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이렇게 뉴욕 관광을 끝낼 수는 없었다.
5번가에서 내리니 거리는 수능시험이 끝난 직후 인파로 미어터지는 종로 이상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귀금속 가게에 가서 구경도 하고 록펠러 센터 주변과 월스트리트, 브로드웨이 등을 온가족이 손잡고 걸으면서 사진도 찍었다. 타임 스퀘어 앞에서는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설명도 해주면서 뉴욕의 밤거리를 즐기다가 저녁 먹을 곳을 찾았다.
아이들이 파스타를 먹고 싶다고 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한 곳에 이르러 창문너머로 괜찮은 집인지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 식당에 들어가던 사람이 "정말 맛있는 집이니까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서 들어가라고 권했다.
자리를 잡고 보니 분위기며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스파게티를 시켜 우아하게 먹으면서 웨이터를 불러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날 무렵 아이들이 서로 다투는 바람에 좋은 기분을 다 망치고 말았다.
비록 브로드웨이서 뮤지컬 관람은 못했지만 투어 마지막에 맨하탄 거리를 걸어 다니며 둘러본 것으로 어느 정도 위안은 된 것 같았다. 비록 실속있는 관광은 아니었지만 오늘 하루가 가족 모두의 추억으로 자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뉴욕관광을 이것으로 마무리 했다.
테너플라이 친구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타임스퀘어 뒷쪽에 있는 공용버스 터미널을 찾아가 버스에 올랐다. 버스 이용객이 의외로 많았다. 나홀로 승용차가 대부분인 LA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버스 운전사가 운전 중에 요금으로 받은 돈을 계속 세는 모습이 몹시 이상했고 위태로워 보였다.
이번 뉴욕 여행을 하고나서 다짐한 것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앞으로는 절대로 그룹투어에 들어가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혹시가 역시나로 바뀌고, 소중한 기회와 시간을 허무하게 날려 버린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하루에 뉴욕관광을 꼭 끝내야 할 형편이라면, 꼭 들러봐야 할 몇 곳을 정해 택시나 지하철로 돌아보고 저녁에 브로드웨이에 가서 뮤지컬을 한 편 보는 것이 훨씬 나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누군가가 묻는다면 뉴욕시내관광은 꼭 두 발로 하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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