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여행

뉴욕을 향해 출발~

주홍완 2008. 10. 16. 22:02

 

집에서 LAX(LA공항)까지 가는 길을 친구 부인이 태워다 주겠다고 했지만, 괜히 주위사람 귀찮게 할 것 없이 택시를 불러 타고 가기로 했다.

 

옐로우캡만 생각하고 시간에 맞춰 집 앞에 나가 기다렸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택시는 보이질 않는다. 전화를 했더니 바로 앞에서 차안을 정리하고 있는 아저씨가 받는다. 그냥 검은색 타운카인데 안에만 택시운전 면허증이 붙어 있지 겉은 그냥 일반 승용차다. 미국에 온지 몇 달이 지나도록 이런 것을 몰랐다니.... 주변에 있는 한인교회라도 나갔더라면 이런 정보를 미리 알 수 있었을까?

 

공항에 도착하니 전자탑승권으로 자동발권을 해야 하는데 이게 영 낯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안내원을 잡고 물어보니 친철하게 가르쳐 준다. 한 번 해보니 정말 간단한 일이었다. 아예 처음부터 그냥 스스로 해 볼 걸....

 

비행기를 탔다.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크린에 비행고도가 33,000피트(10,000m)로 나타나는 것을 보니 한국처럼 국내선, 국제선 간의 비행고도 차이는 없는 모양이다.

 

하긴 국내선이라고 해도 비행시간만 5시간이 넘게 걸리니 서울에서 동남아시아까지 가는 시간과 거리에 맞먹는다. 그 넓은 대륙 위를 떠서 가는데 까마득한 아래의 풍경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사막과 계곡이 기기묘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모하브 사막과 그랜드캐년 어디쯤 아닌가 싶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구글맵으로 찾아봐야지...

 

집사람과 함께 한참 바깥경치를 구경하다보니 배는 고파오는데 스튜어디스가 밥을 줄 생각을 안한다. 기다리다 지쳐서 옆에 앉은 젊은 사람에게 밥 언제 주냐고 물었더니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스튜어디스에게 직접 물어보란다. 속으로 "이 자식 되게 불친절하네" 하고 있는데 스튜어디스가 메뉴표를 나눠 준다. 펼쳐보니 모두 돈을 내고 사먹어야 하는 것들이다. 허걱!

 

나는 한국식으로 다섯 시간이나 가면 당연히 밥을 주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샌드위치, 샐러드 같은 음식을 1인당 9달러 정도씩 내고 사먹을 수밖에 없었다.

 

수년전에 출장을 왔을 때는 캘리포니아 산불 때문에 LA공항에서 10시간 가까이 갇혔다가 한밤중에 뉴욕행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깜깜한 밤하늘 속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적이 있다.

 

다행히 이번엔 출발시간이 아침이라 뉴욕까지 비행하는 내내 도시와 산, 강, 사막, 그리고 평야지대까지 발밑으로 한없이 펼쳐지는 장관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유타주 쯤에선 펼쳐진 울긋불긋한 밸리와 캐년 지대, 아이오와주에선 거대한 평원위에 반듯반듯하게 자리잡고 있는 농장들, 시카고 부근의 오대호 등등...

 

JFK공항에 내려서 집사람이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친구의 사촌동생이 우리 가족을 픽업하러 공항에 나와 있다고 했다. 이 친구가 자기차로 안내를 하는데 BMW Z3인가 하는 스포츠카다. 물어보니 되게 비싸고 좋은 차란다. 국내에서 탤런트 류모씨가 타는 차와 같다고 자랑을 하는데 나한테는 소음만 컸지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이 또한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인가 ?

 

붐비는 뉴욕시내를 뚫고 뉴저지의 테너플라이에 있는 집사람 친구집까지 태워 주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수퍼마켓에 들러 과일 한 상자를 사서 부모님 갖다 드리라고 선물했다. 고맙다며 수줍은 듯 받는데 쌩쌩 달리는 스포츠카를 몰면서도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왜 그리 순진해 보이던지.....

 

테너플라이로 접어들어 골목길에서 만난 동네,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과 울긋불긋한 단풍이 사방에 휘날리는 모습을 보니 내가 정말 뉴욕에 온 게 맞다는 실감이 바로 났다.

 

서부와는 전혀 다른 모습, 모든 이야기가 바로 전설이 되어 버릴 듯한 고색창연한 모습들. 한국의 초겨울 날씨처럼 느껴지는 약간은 쌀쌀한 공기, 동부의 첫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