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토)
며칠 전 주문한 바비큐그릴이 어제 도착해, 오늘 점심은 그릴에 고기를 구워 먹기로 하고 밥과 반찬들을 챙겨들고 아내와 서후리로 향했다.
도중에 양수리 종묘상에 들렀다. 지난주에 보니 불그스름한 잎의 채소가 꽃까지 피운 채 우뚝 솟아 있길래 찍어둔 사진을 보여주고 무슨 채소인지를 물었다. 주인은 적(붉은)겨자채라며, 꽃이 피면 채소로써 효능은 끝나니 뽑아내라고 알려 줬다.
냉해를 입은 고추, 오이, 가지, 토마토 등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도 물었더니 영양제를 뿌려 주면 될 거라고 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냉해에서 벗어나니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했다. 영양제는 한 병에 1만2천 원인데 100배로 희석해 분무해 주면 된다고 했다. 준비된 분무기도 없고 면적이 작은데 영양제를 사야 조금밖에 쓰지 못할 것 같아 며칠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서후리 도착해 텃밭과 나무들을 먼저 둘러 봤다. 새로 옮겨 심은 주목, 향나무, 대추나무 등은 자리를 잘 잡은 듯 했다. 텃밭의 채소들은 호박, 고추, 가지를 비롯한 열매체소를 제외하곤 무성하게 잘 자라 있었다. 당근싹들도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도 발견됐다. 주중에 내린 비로 경사로엔 물길이 나면서 골이 두 줄로 파이고 맨홀은 쓸려든 흙으로 주변부터 안까지 엉망이 돼 있었다. 봄비 치고는 적지 않은 양이 내린 탓도 있겠지만 물골을 따라 올라가 보니 공사가 끝나지 않은 윗터에서 쓸려내린 흙탕물이 우수관로 쪽으로 가지 못하고 우리 터로 길을 잡아 들어오면서 생긴 일이었다.
요즘 비 예보가 끊이질 않는데 그냥 두면 안 될 듯 했다. 위에서 내려오는 물이 아래터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둑을 쌓고 바깥으로 물길을 내는 작업을 했다. 굴삭기로 하면 간단히 될 일이지만, 삽과 괭이로 하자니 만만치가 않았다. 곳곳에 박혀 있는 돌들이 힘을 몇 배로 더 들게 했다. 굳게 다져진 땅엔 삽날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햇볕도 없고 바람까지 부는 날인데도 1시간 반 정도 일을 했더니 땀이 비오듯 했다. 좀 더 깔끔하게 마무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을 더 이어가기엔 힘이 부쳤다.
앉아서 잠시 숨을 돌리다보니 12시가 넘었다. 점심 준비로 아내는 쌈채소를 따서 씻고 나는 숯불을 피우기로 했다. 그런데 조립한 그릴을 숯을 넣고 가스토치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후부터 수도권과 강원 지역에 비소식이 있었지만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혹시 비가 그칠지도 모르니 불을 계속 피울까, 아니면 그만 접을까 잠시 고민을 했다. 빗줄기가 더 굵어지기라도 하면 낭패일 것 같아 그만 접기로 했다. 숯을 다시 봉지에 집어넣고 그릴은 분해해 가방에 넣었다. 바로 그칠 것도 같았던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바비큐를 포기하고 일찍 접길 잘했다는 생각과 그래도 아쉽다는 생각이 겹치면서 기분이 아리송해졌다.
점심은 수능리나 문호리 쪽으로 나가 먹기로 하고 나머지 짐을 챙겼다.
아내는 산과 들로 풍경여행을 다니는 회사 동호회 ‘산들애’ 회원들에게 줄 거라며 빗속에서도 채소를 세 보따리나 뜯었다.
집에 돌아온 아내가 채소를 여러 봉지로 나눴다. 회사에 가져갈 것들을 빼고 옆집과 경비실에도 돌렸다. 저녁식사는 당연히 쌈이 주메뉴가 됐다. 쌈채 중에서는 약간 거친 느낌에 쌉싸름한 뒷맛이 남는 배추쌈이 최고였다. 쌈으로 배추를 먹어본 경험이 없는 둘째가 처음엔 꺼려 했지만 한번 맛을 본 뒤로는 배추만 골라 쌈을 싸먹었다.
직접 가꾼 채소를 수확해 지인, 이웃과 나누고도 넉넉하게 남아 있으니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다. 이런 일도 몇 년 반복되면 무감각해 질 테지만, 그 때까지라도 마음껏 나누며 즐길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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