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을 꿈꾸다

맨홀 뚜껑이 사라졌다

주홍완 2021. 6. 6. 17:09

6월5일(토)

가는 길에 먼저 수능리 친구집 건축현장에 들렀다. 주말이라 일을 쉬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15일쯤 완공 예정이라며 인테리어 작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겉모습이 웅장하고 보기 좋았다. 현관문이 잠겨 있어 겉만 둘러보고는 서후리로 향했다.

 

주차를 하고 집터로 들어서며 보니 주중에 내린 비가 물길을 따라 밖으로 흘러간 흔적이 눈에 띄었다. 지난주에 물길을 내느라 애쓴 보람이 있었다고 만족하며 집터로 올라서니, 아래 터로 내려가는 경사로엔 이전과 같이 빗물이 파놓은 골이 두 개나 나 보였다. 집터 안에 내린 빗물이 낮은 쪽인 경사로를 따라 골을 파며 내려간 것이다. 지하수 관정 옆의 우수맨홀 주변과 안에는 경사로에서 쓸려온 토사가 쌓여 있었다.

 

그런데 맨홀 뚜껑이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에 윤 소장과 통화하면서 지난 주말에 물길 만드는 작업을 했다는 걸 얘기했는데 와서 보고 가져간 걸로 생각 됐다. 윤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다녀갔는지 물었더니 강상면 쪽의 건축일이 바빠 못 와봤다고 했다. 그럼 맨홀 뚜껑이 없어졌다고 했더니 누가 가져간 것 같다고 했다. 집터 안에 설치된 우수맨홀이 세 개인데 그 중 한 개 맨홀의 뚜껑만 없어졌고, 삽과 괭이 등 작업도구도 모두 그대로 있는데 맨홀 뚜껑 한 개만 누군가 가져갔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심지어 맨홀 바로 옆엔 호미까지 그대로 놓여 있는데...

 

뚜껑이 사라진 맨홀

동네 끝이 막힌 도로고, 거기서도 올라와야 하는 곳이라 외지인이 지나다 들를 일은 거의 일어나가 어려운 위치고, 뭔가를 훔쳐가기로 작정하고 온 사람이라면 가져갈 게 맨홀뚜껑 한 개만이 아닌 상황이라 동네 주민 중의 누구 소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동안 만난 동네 분들은 모두 노후를 여유롭게 즐기는 분들로 경제적으로도 꽤 풍족해 보였는데... 하긴 그동안 내가 만나 본 분들은 주민의 아주 일부일 뿐이다.

 

이게 얼마나 한다고 가져갔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황당하고 기가 막히는 일이 일어났다. 이 좋은 곳에서 만날 이웃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될 거라는 게 슬퍼졌다.

 

경사로로 물길이 나는 걸 막으려면 후면 도로 쪽의 땅 높이를 경사로 초입보다 낮춰야 하는데 손으로 하기엔 힘에 부치는 꽤 큰 작업이다. 나중에 윤 소장이 굴삭기로 전반적인 정리를 해주겠다고 했으니 그 때 부탁해야겠다.

 

토마토 곁순을 따주고 애호박에는 줄기를 뻗어갈 수 있도록 줄을 매줬다. 고추는 아직도 냉해에서 벗어나질 못하는지 크질 않아 곁순따주기는 다음 주말쯤에나 가능할 것 같았다. 오이는 아직 작았지만 넝쿨손을 뻗어내고 있어 옆에 지주를 세워 줬다.

 

 점심밥과 고기를 넉넉하게 준비해 왔기에 이미 두 차례나 신세진 적이 있는 아내 회사의 선배부부를 초청했다.

 

그늘에 앉을 자리를 고르는 작업을 하면서 숲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도 만들었다. 앞으로 날씨가 더 더워지면 숲속 나무에 해먹을 매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곳에 누워 시원한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고 숲이 내주는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손님들이 오시는 시각에 맞춰 미리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웠다. 처음 써보는 그릴인데 불도 잘 피고 판이 넓어 고기를 굽는데 아주 편리했다. 어느 정도 익은 고기는 가장자리로 돌려놓고 새 고기를 가운데 올려놓으며 고기를 구웠다. 그 사이에 아내는 채소를 따서 쌈을 마련했다.

 

고기가 다 구워지고 식사 준비가 끝날 때쯤 손님들이 도착해 바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식사를 했다.

 

동네 주민인 길고양이 한 마리가 고기냄새를 맡았는지 근처에 와서 어슬렁거렸다. 고기를 몇 첨 던져 주었는데 멀찍이 서서 보기만 했다. 안타까웠지만 고양이가 경계심이 크기 때문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가는 틈을 노렸는지 고양이가 순간적으로 다가와 고기를 물고는 잽싸게 멀찍이 벗어나 먹는 행동을 반복했다. 짝이 있기는 한 건지 보일 때마다 혼자 다니던데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도 이 숲에선 몇 안 되는 포식자 그룹에 속해 있지 않을까?

 

시원한 그늘에 앉아 좋은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네 시가 훌쩍 넘어섰다. 손님들이 가시고 난 후 아내는 지인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며 채소를 네 봉지나 땄다.

 

이런 황당한 도난 같은 언짢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공구들을 정리하고 물주기까지 끝내고 나선 시각이 5시, 아내를 위해 서종골프연습장에 들렀다가 코스트코를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