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토)
이번 주말은 부모님 산소에 다녀올 계획을 세우고 양평행은 건너뛰려 했다.
어제 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주말에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예보가 틀리기를 바랐는데,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정도 비라면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향에 계시는 형님께 전화를 드렸다. 형님께서는 서울보다는 비가 많이 오는 것 같다며 다음에 내려오라고 하셨다. 산소에서 함께 보기로 했던 대전 누님께도 전화를 드렸더니 다음으로 미루자는 말씀이셨다. 내리는 양이 적더라도 비가 오면 산소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 잡초도 뽑고 형제들과 산소에 둘러앉아 그동안 지낸 얘기도 나눠야 하는데 젖은 잔디 위에서는 그럴 수가 없으니 성묘 일정을 미루는 게 좋을 듯 했다.
그럼 오랜만에 주말을 집에서 빈둥거리며 보내볼까 생각하다 아내에게 물어봤다. 아내는 양평에 잠깐 다녀오자는 의견을 냈다. 오이, 고추, 수박 등을 돌보고 잎채소 수확을 해야 하고 지난주에 옮겨 심은 당근모 상태도 어떤지 궁금하다고 했다.
다른 때보다 늦은 시각인 8시에 집을 나섰다. 올림픽도로 통과는 괜찮았는데 양양고속도로는 강일IC부터 막혀 있었다. 하남시의 미사강변대로 끝에서 만나는 팔당대교 램프도 입구부터 꽉 막혀 있었다. 팔당댐을 건너가는 게 낫겠다 싶어 광주 방향으로 직진했다. 그런데 이 길도 많이 알려졌는지 팔당댐 약 1km 전방부터 1차선에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늘어선 차들 뒤에 붙어 가다 서다를 30분가량 반복한 끝에 팔당댐에 이르렀다. 그 사이에도 바깥의 2차선에선 차들이 어느 정도 속도를 내며 달려갔다. 광주 쪽으로 가는 차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테고 팔당댐 앞까지 달려가서 1차선으로 끼어드는 차들이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사람들의 양심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헛된 것이었다. 2차선으로 달려와 팔당댐 바로 앞에서 끼어드는 차들이 적잖게 눈에 띄었다.
그들에게 이런 끼어들기가 질서를 지키는 다른 사람들에게 금전적 손해와 정신적 피해를 가하는 일이라는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끼어들기를 한 경우라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는 결과는 마찬가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소시오패스류 아닌가? 안타까운 일이다.
없어진 맨홀뚜껑을 구입하기 위해 먼저 양수리 철물점에 들렀다. 휑한 맨홀을 볼 때마다 마음이 상하는 터라 얼른 채워 넣는 게 여러 면에서 나 자신을 위해 좋을 듯 했다. 뚜껑 중에 가장 작다는 것을 1만 8천 원 주고 샀다.
서후리 도착하자마자 새로 산 뚜껑을 맨홀에 갖다 댔는데 들어가지 않았다. 크기를 자로 재보니 기존 뚜껑은 31cm x 37cm, 새로 산 뚜껑은 31cm x 38.5cm였다. 길이에서 1.5cm 차이가 났다. 뚜껑 크기가 이렇게 세분돼 있다는 걸 모른 채 정확하게 치수를 먼저 재보지 않은 내 실수였다.
이식한 당근모는 강한 햇볕 아래서 옮겨 심었기 때문인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싹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잎이 파릇한 걸로 봐서는 죽은 것 같진 않고 기운을 차리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 했다.
고춧대엔 큰 고추들이 제법 달렸고 20cm 정도 되는 큰 오이도 8개나 땄다. 애호박도 본격적으로 열리는 건지 포기마다 여러 개씩 달고 있었다. 맷돌호박에도 크기는 작지만 호박이 여러 개 달렸다. 수박모에도 콩알만 한 수박이 앙징맞게 여러 개 달려 있다. 가지는 순을 다 쳐줬는데도 아직까지 열매는 맺지 않고 키만 열심히 크는 중이다. 토마토는 익으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듯 보였다. 아내의 강력한 의지로 심은 들깨는 무성한 잎을 내며 잘 자라고 있었다. 대파와 부추는 영 시원치 않았다.
수박은 유튜브에서 알려주는 대로 순을 쳤다. 애호박은 줄 위로 순을 유인하고 맷돌호박은 원순을 치고 자식순을 2~3개 키우는 쪽으로 줄기를 정리했다. 오이는 지주를 넘어서 자란 줄기를 유인하기 위해 추가로 줄을 매줬다. 그 사이에 아내는 잎채소를 한보따리 뜯었다.
애초 문호리 종묘상에서 오이모와 참외모를 각각 세 포기씩 산 건데 열매가 달리는 걸 보니 참외모는 없고 모두 오이모였다. 참외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고른거였는데 종묘상 착오로 참외 구경은 할 수 없게 됐다.
일을 끝내고 차에 짐을 정리하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우리 이젠 양봉도 하는 건가?"하며 전봇대의 임시전기함 쪽을 향해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무슨 얘긴가 하며 돌아봤더니 전봇대와 전기함 사이에 벌집이 있고 10여 마리의 벌들이 붙어 있었다. 한번 쫒아오면 머릿속에도 그대로 박힌다는 무서운 땡벌이었다. 기겁을 해서 아내를 멀찍이 떼어 놓았다. 뭘 모르면 용감하다는데 바로 그 짝이다. ^ - ^
맨홀뚜껑은 철물점에 다시 가서 바꿨다. 주인은 처음에 더 작은 건 없다고 하더니 자로 잰 크기를 알려 줬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맞는 걸 찾아 줬다. 철물점 주인도 작은 맨홀뚜껑 세로 길이가 37cm와 38.5cm로 세분돼 있다는 사실을 몰랐나 보다.
다른 볼일이 있어 건축이 끝났다는 수능리 친구집엔 들러보지 못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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