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토)
2주 만에 찾은 서후리 텃밭엔 가을이 성급하게 내려온 모습이었다.
뜨거운 볕을 피하려는지 여름 내내 잎사귀 밑에 웅크리고 있던 호박들이 이제는 여기저기서 누런 자태를 온통 드러낸 채 누워 있었다. 그동안 볕을 가려주던 잎들이 절반쯤은 말라버렸고 석달여 동안 거름과 햇볕을 자양분으로 자란 열매는 더 이상 햇볕을 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여물었기 때문이다.
들깨도 잎들이 바래기 시작했다. 깨송이를 따보겠다며 잔뜩 기대를 품었던 아내는 누래지는 잎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아쉬워 했다.
아내가 고추를 따는 동안, 나는 배추와 무를 심으려고 상추를 가꿨던 자리를 삽으로 깊게 갈아 엎었다. 2주 전에 뿌려 놓은 퇴비를 골고루 섞어 주는 일도 함께 했다. 삽질은 언제 해도 힘이 들었다. 한 두 해 더 텃밭농사를 이어가다 보면 삽질에 이골도 날 거고, 흙속의 돌도 웬만큼 골라질테니 조금은 수월해지려나 모르겠다.
퇴비와 뒤집은 흙을 섞어 만든 이랑엔 문호리 종묘상에서 모종으로 사 온 수박무, 자색무, 상추를 심었다. 양수리 종묘상에서 배추모종 밖에 남은 게 없다고 해서 문호리가서 사겠다고 그냥 나왔는데, 그곳엔 배추모종이 떨어졌다고 했다. 배추모를 사자고 다시 양수리로 돌아갈 수 없어 무와 상추 모종만 사고 말았다.
오늘이 지나면 배추모 심을 시기를 놓쳐버릴 것 같은데 올해는 아무래도 이 걸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오히려 배추는 벌레가 많이 꾄다며 꺼려한 아내 뜻에 맞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상추는 지난 봄에 너무 많아 주체를 못할 지경이었는데, 이번에도 아내가 욕심을 내 스무 포기 가까이나 심었다. 종묘상에서 인심 쓰며 거저 준 탓도 있다. 가을상추는 얼마나 맛이 있을지 또 얼마나 거둘 수 있을지...
봄에 주목을 묘목으로 다섯 주 심었는데 그 중에 세 주가 잎이 누렇게 되면서 말라 죽었다. 향나무를 비롯해 같은 날 묘목으로 심은 다른 나무들은 활착이 잘 됐는데 주목에서만 이런 문제가 나타났다. 배수가 너무 잘 돼 땅속 수분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올 가을엔 주인 발소리가 이전보다 뜸해질텐데, 그렇더더라도 오늘 심은 가을채소들이 잘 자라주면 좋겠다.
※인터넷에서 ‘주목 생육환경’을 찾아보니 “습윤비옥한 땅에서 잘 자란다”고 나온다. 예상한 대로 주목이 말라 죽은 이유는 땅이 너무 메말랐기 때문인 것 같다. 다음에 묘목을 새로 심을 때는 비닐로 멀칭을 해줘야겠다.
'전원생활을 꿈꾸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은 익어가는데... 호박과 고추는 아직도 철을 모르는지 (0) | 2021.10.04 |
---|---|
당근을 심었는데 동자삼이 나왔다 (0) | 2021.09.25 |
아름답지만 가슴을 시리게 하는 저녁 노을 (0) | 2021.09.07 |
늙은 호박, 익은 수박 그리고 배추씨앗 파종 준비 (0) | 2021.08.15 |
서후리 공기, 서울과 달리 시원하고 상쾌하네 (0) | 2021.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