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을 꿈꾸다

가을걷이 후 월동대파를 심었다

주홍완 2021. 10. 20. 16:58

10월 16일(토)

주말부터 전국적으로 기온이 급강하할 거라는 예보가 며칠 전부터 이어졌다. 서울의 토요일 최저 기온이 0℃까지 떨어질 거라고 했다.

 

서울이 그 정도라면 양평, 특히 서후리는 영하까지 떨어질 수 있으니 텃밭 작물들을 그대로 두면 얼 수도 있다. 어제까지 함께 가서 가을걷이에 손을 보태기로 했던 아이들은 막상 아침에 일어나질 못해 아내와 둘이서만 서둘러 출발했다. 지금까지 우리 가족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고 이웃에게까지 넉넉한 인심을 쓸 수 있도록 해 준 고추, 들깨, 당근, 호박 등을 잘 거두고 월동대파를 심는 게 오늘 해야 할 일이다.

 

서후리 터에 들어서니 선명하게 찍힌 고라니 발자국들이 사방 가득하다. 텃밭을 시작한 초봄에만 몇 차례 보였던 건데 가을산에 벌써 먹을 게 부족해져 이렇게 내려와 서성댄 것인지 모르겠다.

 

바로 전날 다녀간 듯 여기저기 선명하게 찍혀 있는 고라니 발자국들

고춧대를 뽑아 고라니막이울타리 밖으로 옮겨 놓고 바닥에 깔아 놨던 비닐까지 걷어 냈다. 당근도 모조리 뽑았다. 뽑아낸 고춧대에서 고추와 고춧닢을 따내는 일은 아내가 맡았다. 상추는 모두 뽑고 무는 절반 정도를 남겨 놓았다. 추위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남겨 놓은 무가 2주 후까지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춧대를 모두 뽑아 모아놨다.

 

추위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호박은 여전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제 갈길을 가고 있다.

 

수확해 모아 놓은 애호박과 맷돌호박

 

땅이 단단해 밑으로 뻗지 못하고 옆으로 구부러져 자란 당근.

 

무도 옆으로 누워 컸다.

 

무도 뽑아보니 당근과 마찬가지로 옆으로 굽어 있다.

 

들깨송이, 대를 뽑아 말린 다음에 털어야 깨가 나오는데 그것까지는 어려운 일이라...

 

오늘 아침 양수리 종묘상에서 월동대파 200포트 한 판(1만 원)을 샀는데 그걸 다 심으려면 2주 전에 만들어 퇴비를 뿌려 놓았던 두둑 하나로는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삽질을 다시 시작, 고춧대를 뽑아 낸 자리를 새롭게 일구고 앞서 흩어 놓았던 퇴비를 옮겨서 뿌려 줬다.

 

대파모는 포트 개수가 200개니 포기 수로는 400포기 이상 될 것 같았다. 이랑에 심는 작업은 아내가 맡아서 마무리까지 잘 했다.

 

월동대파 포트 한 판

지난봄에 심었던 대파는 왠지 제대로 자라질 못했다. 심은지 얼마 안 돼 흐물흐물 녹아 없어지거나 몇 포기 살아남은 것마저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오늘 심은 대파는 겨울을 잘 이겨내고 풍성하게 자라나길 기대해 본다.

 

올해 첫 텃밭농사를 지으며 크게 깨달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고랑을 넓게 해야 농작물관리가 수월해 진다는 점이다. 땅을 알차게 쓴다고 고랑을 좁게 하면 일하는 내내 매우 불편하다.

 

둘째, 당근을 씨로 파종할 때에는 흩뿌리지 말아야 한다. 흩뿌리기로 파종한 결과 싹이 너무 빼곡하게 나서 당근이 끝내 굵어지지 못했다. 널찍하게 옮겨 심은 절반 정도는 뿌리가 제법 굵어졌지만, 원래 난 자리에 그대로 둔 당근들은 줄기와 잎만 무성할 뿐 뿌리는 젓가락정도 굵기밖에 되지 않았다.

 

셋째, 뿌리채소는 심기 전에 땅을 깊게 일궈줘야 한다. 삽으로 날 깊이가 넘도록 깊게 일궜는데도  당근과 무 모두가 아래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ㄴ자로 꺽이거나 모양이 울퉁불퉁했다. 처음 한 번 정도는 트랙터로 깊게 갈아주는 게 좋을 것 같다. 

 

땀흘리며 일한 뒤에 새소리, 바람소리를 양념으로 얹어 먹는 새참은 참 맛있다. 고즈넉한 곳에서 의자 등받이에 편안하게 기대 조만간 지을 집을 이리저리 앉혀보고 정원을 어떻게 꾸밀지를 머릿속에 그려 보는 일은 언제나 가슴 가득 행복을 채워준다.

 

그런 생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이어가다 보니 몇 시간 후면 내려올 어둠을 품에 안고 오늘은 이곳에서 밤을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찬 기운과 이슬을 막아줄 지붕도 없으니 지금은 어려운 일이다. 윤 소장이 조만간 가져온다는 컨테이너가 설치되면 화톳불을 피우고 하룻밤쯤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지금처럼 막히는 길을 뚫고 서울로 올라갈 걱정으로 몇 시간만에 부랴부랴 길을 나서지 않아도 되겠지~~

 

고라니들이 와서 먹으면 좋을 것 같아 잔 당근과 풍성한 싹들을 울타리 앞에 펼쳐 두었다. 아내는 우스개로 고라니들이 맛집으로 알고 떼로 계속 오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고라니들이 맛있게 먹을런지 모르지만 그들의 허기를 잠시라도 달래줄 수 있으면 좋겠다. 

 

수확한 고추, 당근, 호박, 들깨송이 들로 승용차 뒷자리와 트렁크가 모두 꽉 찼다.

올해 텃밭농사는 이렇게 끝난 것 같다~~

가을걷이를 끝낸 텃밭. 왼쪽의 들깨 뒤에 보이는 곳이 새로 심은 대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