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찾아온 가을이 벌써 계절의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나 싶던 단풍도 불과 며칠 만에 색 바랜 낙옆을 떨군다. 이번 가을은 우리에게 푸른 하늘과 고운 단풍을 즐길 여유도 주지 않고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가 보다.
아무래도 10월 중순에 갑자기 닥쳤던 찬기운이 나무들을 서둘러 월동채비로 이끌었기 때문인 것 같다. 서울 최저 기온이 0도까지 떨어져 같은 시기에 64년 만에 나타난 최저기온이라고 했던 그 때 서둘러 외투를 꺼내 입었던 일이 떠오른다. 요즘들어 다시 늦가을 답지 않은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고는 있지만,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낙엽이 비처럼 내린다.
다행히 2주 전에 심은 월동대파는 잘 뿌리를 내린 것 같다. 밤이면 추위가 찾아오니 여린 모종이 쑥쑥 크는 건 애초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다만 가혹해질 한겨울 추위에도 가끔 찾아올 내게 꿋꿋이 잘 버티고 있다는 손짓만 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버티다가 내년 봄이 오면 활짝 기지개를 켜고 온 세상의 기운을 받아들이길 바란다.
오늘은 감나무에 월동을 위한 보온작업을 했다.
추위에 특히 약해 서후리 지역에선 재배가 어렵다고들 하는 대표적인 유실수가 감나무다.
버블(뽁뽁이)로 비닐 멀칭을 하듯 줄기 밑의 땅을 먼저 덮어주고 밑둥을 감싸주는 방식으로 했다. 짚이나 천으로 싸주지 않은 것은 눈, 비 등으로 보온재에 습기가 스며든 상태에서 기온이 떨어지면 동해를 더 크게 입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지 끝까지 전체를 감싸주지 않았는데, 보온작업을 이렇게만 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 해보는 일이니 내 상식이 맞길 기대해 본다.
제 할 일을 모두 끝내고 명을 다한 호박줄기를 모두 걷어 한곳에 모았다. 그동안 사용했던 멀칭용 비닐도 모두 모아서 수돗물로 흙을 깨끗이 씻어냈다. 비닐은 그곳에 버리거나 태울 수 없으니 서울로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복숭아, 대추, 사과 묘목 등에 멀칭용으로 깔아뒀던 퇴비포대도 모두 걷어 한 곳에 모은 다음 블루베리와 대파밭에 물을 흠뻑 주는 걸로 오늘 일을 마쳤다.
바로 뒤의 (양평)청계산은 해발 높이가 656m로 뫼가 높고 그에 따라 골도 깊은 편이다. 그래서 식물원인 오르다온에 오르는 길 주위도 단풍이 꽤 볼만해 동네를 한바퀴 둘러보는 걸로도 어느 정도는 가을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
아내와 함께 걸어서 안동네 쪽으로 길을 나섰다.
올라가는 길 오른편에 전에 없었던 미니주택이 한 채 보였다. 가서 봤더니 농막 두 채를 2층으로 구성해 놓은 집이었다. 잔디를 깔아 놓고 그네까지 들여 놓은 걸 보니 이미 사용 중인 세컨드하우스인 것 같았다. 빈집인지 대문이 굳게 닫혀 있어 내부를 볼 수는 없었다.
그 정도로 구경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바로 옆에 있는 빨간 벽돌집에 아주머니께서 마당에 나와 계신 게 보였다. 지난 여름, 부부가 우리 터로 찾아오셔서 인사를 나눈 분이다. 아내가 대문 앞에 가서 인사를 했더니 반갑게 맞아 주셨다. 벌써 최저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떨어진 날이 있었다며 대문 옆에 있는 큰 단풍나무가 위쪽은 얼어버렸다고 알려 주시더니 텃밭으로 데려가 잘 가꾼 무를 한 아름 뽑아 주셨다. 넉넉한 인심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짐이 생겼으니 오르다온까지 올라가 보기는 어렵게 돼 도중에 돌아오고 말았다. 이렇게 이번 가을과는 이별인가 보다.
'전원생활을 꿈꾸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해 농사를 시작했다 (0) | 2022.04.14 |
---|---|
산지전용허가의 기한과 연장 방법 (0) | 2022.03.16 |
가을걷이 후 월동대파를 심었다 (0) | 2021.10.20 |
가을은 익어가는데... 호박과 고추는 아직도 철을 모르는지 (0) | 2021.10.04 |
당근을 심었는데 동자삼이 나왔다 (0) | 2021.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