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을 꿈꾸다

게으른 도시농부의 텃밭이란...

주홍완 2022. 7. 11. 20:00

7월 9일(토), 아내와 함께 2주 만에 양평을 찾았다.

 

오늘은 오후에 일이 있어 점심 전까지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아침 6시에 문을 나섰다. 이른 시각인데도 올림픽대로는 붐볐고 양양행 고속도로 입구와 팔당대교에도 차가 제법 많았다. 고유가 시대에도 이른 아침부터 도로가 붐비는 모습을 보며 퇴직하면 이렇게 붐비는 주말을 피해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그려 봤다. 이제 7개월 반 뒤면 34년 2개월을 이어온 회사생활이 막을 내린다.

 

비온 뒤라 그런지 터엔 우뚝 자란 망초들이 게으른 주인을 한껏 비웃는 듯 했다. 텃밭엔 상추들이 제 할 일을 다 끝냈다며 잎을 거둔 채 씨앗 맺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멀칭을 하지 않고 심은 수박·참외·오이·호박밭은 바랭이와 같은 잡초들 세상이 돼버렸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어른들 말씀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광경이었다.

 

아내는 상추와 깻닢, 고추를 따기 위해 텃밭으로 향했고, 나는 울타리 바깥의 호박·수박밭으로 먼저 갔다.

 

작년에는 제법 달렸던 호박이 올해는 단 한 개만 눈에 띌 뿐이었다. 잡초에 묻혔기 때문인지, 줄을 매서 순을 위로 달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작년에 비해 올해는 결실이 형편없다. 이제 막 맺히기 시작하는 호박이 몇 개 눈에 띄었지만 수확이 가능하도록 자라 줄지 걱정이 됐다. 오이도 늙은 오이 한 개와 한 뼘 가량 되는 어린 것 두 개만 눈에 띌 뿐 허전했다. 수박마저 포기당 한 개씩만 달려 있을 뿐이었다. 참외는 싹만 무성할 뿐 열매가 아예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한 포기에 한 개 밖에 달리지 않아 섭섭한 수박

그동안 매주 오지 못한 데는 여러 핑계가 있지만, 잡초가 뒤덮은 이런 상황은 게으른 농부에게 보내는 텃밭의 경고인 듯했다.

 

작물 주변의 큰 풀들은 어느 정도 뽑아냈다. 터 전체에 퍼져 자라고 있는 망초 등을 뽑아야 해서 막 돋아나는 잔풀까지는 정리하지 못했다.

 

한 포기씩 자라는 망초를 뽑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으나, 무더기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쑥은 뽑는 일은 여간 힘이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 때문에 손목에 무리가 갔는지 집에 돌아오는 내내 움직일 때마다 약간의 통증과 불편함이 느껴졌다.

 

잡초도 농작물과 같은 생명체이고 자연의 일부다. 그런데 사람의 필요에 따라 그 존재가치가 결정되고 뿌리채 뽑히기도 한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전원생활은 자연을 끊임 없이 거스르고 해치는 반자연적인 행위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인간이 에너지를 적게 쓰고 자연에 해를 덜 입히는 생활은 역설적이게도 도시서 사는 것이라고 한다. 도시는 자연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제한된 공간이고 에너지 효율이 높으며 1인당 주거공간인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보편적 관점에서 굳이 따져 보자면 전원생활이라는 게 친환경적이지 않은 일부 사람들의 사치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석축 사이에 심어 놓은 철쭉들 전지도 했다.철쭉은 7월 초순까지만 정리해 주면 내년에 꽃을 피울 순이 나온다고 해서다. 마디가 길게 삐죽삐죽 자란 것들을 모두 잘라 줬는데  바짝 다듬고 보니 너무 쳐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지난 폭우에 유실된 축대쪽 경사면을 흙으로 메웠다. 윤 소장이 며칠 전 굴삭기로 땅을 골랐지만, 물길이 난 비탈면의 철쭉 몇 포기는 뿌리 주위 흙이 온통 쓸려 나간 채였고 대추나무도 뿌리 밑이 휑할 정도로 파인 상태였다. 이런 부분은 삽으로 마무리를 해야만 한다.

 

축대 아랫쪽으로 물길이 나면서 흙이 쓸려 내려간 모습.

그동안 아내는 농작물들을 수확한 뒤 고구마순을 꺽어 껍질까지 깠다.

 

이로써 오늘 일은 11시에 일을 일찍 마쳤다. 바삐 움직이느라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다.(위에 올린 사진 두 장은 한 주 전에 수능리 친구가 찍어 보내준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와 일을 도와준 수능리 친구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