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뉴먼트밸리의 정식명칭은 Monument Valley Navajo Tribal Park으로, 유타 남부와 애리조나 북부의 경계선쯤 콜로라도고원 상에 위치하고 있다.
전편에서 얘기한 무시무시한 낭떠러지를 지나 31마일 정도를 더 달리면 이른다. 가는 도중 서부영화에서 멕시칸 총잡이들이 쓰고 다니는 모자처럼 생긴 Mexican Hat이라는 바위를 만나게 되는데 거기서 멀리 앞에 보이는 장관이 바로 모뉴먼트밸리다.
이곳은 1884년 21대 대통령인 체스터 아서가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을 현재의 Monument Valley지역까지 확대하면서 인디언들이 관리하게 됐고 1930년대 사진작가인 조지프 뮤엔치의 작품에 등장한 이후에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헐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게 되면서 존 웨인과 헨리 폰더 주연의 “Vanishing American”(1925), “My Darling Clementine”(1969), “She wore a Yellow Ribbon”(1949) 과 같은 서부영화와 최신의 “Back to the Fututre III”, “Forest Gump”, “Disney’s Tall Tales”, “WindTalkers”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사암으로 이루어진 400 ~ 1,000 피트 높이의 거대한 탑들과 하늘에 떠있는 구름, 그 구름의 그림자들이 한가로이 사막 바닥에 수 놓는 모습들이 한 데 어우러진 모습이 장관이다.
이곳은 인류가 출현하기 전엔 낮은 분지였다고 한다. 이후 초기에 생성된 바위들이 침식되면서 생긴 물질이 수 억년 동안 층층이 쌓였다가 지하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서서히 융기하면서 해발 1~3마일 정도 높이의 현재 지형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바람과 물이라는 자연의 힘이 고원의 표면을 이처럼 만드는데 약 5,000만 년 정도 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디언들이 모는 지프를 타고 설명을 들으며 내부까지 깊숙이 돌아 볼 수 있는 가이드투어가 있고, 관광객이 직접 차를 몰고 돌아 볼 수도 있다. Ear of the wind와 몇 곳은 가이드투어를 이용해야만 관람할 수 있다.
공원 안 주차장에는 4륜구동형 자동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관광객이 들어가면 이를 운행하는 인디언들이 다가가서 지프여행을 할거냐고 물어 보곤 한다.
공원안의 관광도로는 비포장 황톳길이라서 승용차로는 안된다고 하지만 땅이 굳어 있는 맑은 날에 초입의 몇 군데만 둘러보는 정도라면 굳이 4륜구동형이 아니라도 괜찮다. 실제로 승용차들이 공원 안쪽까지 들어가 돌아다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입구 전망대에서 바라볼 때까지는 존 웨인과 기병대,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달리던 서부영화의 장면을 많이 떠올렸다. 그러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도 밖에서 봤던 것 이상의 대단한 경치는 눈에 띄지 않았다. 서부영화의 장면 속으로 들어왔다는 감동은 입구서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처음 여행을 떠나오면서 4륜구동형 차량을 렌트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이곳을 제대로 둘러 보기 위함이었다.그런데 비포장길에 차가 많이 흔들리자 뒷 쪽에 탄 아이들로부터 힘들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 바람에 샅샅이 둘러보지 못하고 도중에 발길을 돌려 나와야만 했다.
이곳을 둘러보면서 아쉬웠던 점 한 가지는 지금까지 지나온 미국내 다른 국립공원들과는 다르게 매우 어설프게 상업화 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조금 씁쓸하기까지 했다. 뭔가 꼭 집어 표현할 수는 없지만 자연보호도 제대로 하면서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관광객을 맞는다면 훨씬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공원이 아니라 인디언 자치구역이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인 듯 했다. 인디언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지역 공동체를 제대로 꾸리지 못하는 등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했다.
이 같은 느낌은 카옌타라는 소도시의 인디언 거주 구역에 우연히 들어갔을 때 더 커졌다.
모뉴먼트밸리 관광을 끝내고 숙소로 정한 카옌타(Kayenta)에 도착한 때가 오후 4시경, 하루 일정을 마감하기엔 조금 이른 시각이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나서 저녁식사꺼리를 준비하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마켓을 찾느라 여기 저기 헤메다가 우연히 들어가게 된 주택가는 거의 모든 건물들이 참으로 낡아 보였다. 주변도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곳은 인디언들만이 사는 소도시로 이전까지 미국에서 봐 온 여느 타운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의 버려진 폐광촌에 비유하면 너무 심한 걸까?
가난과 절망이 겉으로 묻어나는 인디언들의 주거 환경과, 마켓 앞에서 마주친 몇몇 젊은이들의 초점 없는 눈동자는 나를 슬프게 했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최소한 먹고는 살 수 있도록 생계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 외려 많은 인디언들을 술과 마약에 절어 살게 한다는 얘기가 정말 맞는 것일까? 정부가 교묘하게 그들이 자각하고 자립할 수 있는 의지를 꺽어 놓는다는 얘기들이 정말 맞는 말일까? 지금까지는 이런 말들이 단지 귀납적으로 꿰맞춘 추론일 뿐이라며 무시했는데 현실을 보고나니 아주 그렇게만 치부해 버릴 일도 아닌 것만 같았다.
마켓안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이들의 얼굴에서 활기나 행복해 하는 표정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이런 나의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저녁거리를 사서 차를 세워둔 어두운 주차장으로 가는데 저쪽에서 누군가가 황급히 뒤따라 왔다. 잔뜩 경계하며 차문을 여는데 액세서리 같은 수공예품을 사라며 가방을 펼쳐 보인다. 나는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면서 거절했다. 수줍은 듯 미안해하는 그의 얼굴이 퍽 안쓰러워 보였다. 어깨를 늘어뜨린 채 쓸쓸히 돌아서는 그의 등을 바라보는 내 가슴으로 먼지가 가득한 바람이 휑하니 몰아쳤다.
인디언보호구역 내에서는 술은 물론이고 맥주도 팔지 않는다. 마켓 점원에게 물어보니 술을 사려면 100마일은 나가야 한단다. 그런데 밖에 서서 몽롱한 시선으로 이방인을 바라보던 그 눈길들은 무엇에 취한 것이었을까...
※ 참고 사항
서부영화에 배경으로 등장하곤 했던 이곳에 관한 정보를 찾으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니 Navajo National Monument라는 곳과 함께 두 군데가 나와, 헷갈린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또 찾는 Monument Valley는 국립공원에 속한 곳이 아니라 인디언들의 자치구역 내에 있다. 따라서 NPS(National Park Service)의 연간 이용권은 사용할 수 없다. 1인당 5달러의 입장료를 별도로 내야 한다.
NPS에서 관리하는 시설에는 Park, Forest, Monument 등이 있다. Monument는 규모, 인지도 등의 면에서 Park보다 한 단계 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National Monument Valley는 NPS에 의해 관리되는 다른 곳으로 이곳과 글렌캐년의 중간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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