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옌타에서 1박을 하면서 호텔에서 제공하는 빵과 몇 가지 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그동안 묵은 호텔 중에서 메뉴가 제일 괜찮았다. 음식이라고 해야 빵과 요거트, 시리얼, 과일, 계란, 와플 등이 전부로 다른 곳들과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입에 맞는 베이글도 있었고 식당 내부가 깨끗하고 따뜻했다. 작은 차이였지만 덕분에 어제 저녁의 서글펐던 카옌타 토착민 거주지에 대한 느낌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B지점에 Lake Powell 댐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보이는 하늘색 부분이 호수다. 오늘 아침에 이동해야 할 거리는 103마일.
서둘러 식사를 끝낸후 글렌캐년을 향해 길을 떠났다.
106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98번 도로로 접어들자 들판과 도로에 눈이 제법 쌓여있다. Lake Powell 댐까지 이르려면 103마일 거리를 부지런히 달려가야 하는데 안전 때문에 속도를 더는 낼 수는 없었다. 글렌캐년에도 저렇게 눈이 쌓여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까지 마구 머릿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마치 거대한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기둥이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부터 기온이 올라가고 눈도 녹기 시작했다.
하늘로 뻗어 올라간 그 기둥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듭되는 길을 달리던 중 멀리 언덕너머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처음에는 구름 같기도 하고 연기 같기도 한 것이 모양이 흩트러지지도 않아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냈다.
한참을 달려서야 Antelope Point로 들어가는 입구쯤에 공장처럼 생긴 커다란 건물에 딸린 거대한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을 하는 곳인가 궁금해 속도를 늦춰가며 봤는데 건물 밖에 아무런 표시나 설명도 없었다. 나중에 여행을 끝낸 뒤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나서야 그곳이 Navajo 발전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찾아가는 Lake Powell은 댐이 들어서면서 조성된 호수다. 이 곳은 빼어난 풍광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두 번째 큰 호수로 유명하다. 애리조나주의 Page에서 유타주의 Hite까지 그 길이가 186마일에 이르는 이 호수는 Glen Canyon의 남쪽 끝을 막는 댐이 1963년 완성된 이후 저수를 시작해 17년이 지난 1980년이 되어서야 만수위가 되었다고 한다.
이 호수가 유명하게 된 것은 깊으면서도 맑은 물과, 초목이 거의 자라지 않는 사암지대, 수없이 많은 협곡, 첨탑형 바위 등 호수주변을 둘러싼 절경 때문이다.
위의 지도에서도 볼 수 있지만, Lake Powell은 규모가 너무 크고, 볼거리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어 모든 곳을 돌아보기는 쉽지 않다. 일부만 구경하려 해도 여러 날이 걸릴 수 있다. 게다가 호수와 Glen Canyon에 접근할 수 있는 도로가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 위한 방문 목적이 아니라면 댐 주변의 몇 군데만 선택해서 돌아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댐 주변에는 리조트가 있고, 호수의 끝인 북동쪽의 Hite 근처에는 기본 시설들과 몇 개의 접근로만 있다. 수 년 전부터 이상기후로 가뭄이 계속되면서 호수의 수위가 낮아져 지금은 마을에서 물이 꽤 멀어진 상태다.
Lake Powell 댐을 건너가 Wahweap에서 호수 건너를 바라 본 풍경. 멀리 보이는 것이 Navajo 발전소로. 글렌캐년에 오는 도중 기이하게 보였던 연기기둥은 정반대쪽에서의 모습이다.
Antelope Point 마리나로 내려가는 램프. 그동안 가뭄으로 물이 많이 줄어들어 호수의 폭이 상당히 좁아져 있다.
Antelope Point를 둘러보고 나와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Page 시내로 들어갔다. 그런데 성탄절이라 그런지 맥도날드까지 모든 음식점들이 문을 닫았다.
하는 수 없이 Lake Powell댐으로 이동을 했는데 그 곳의 견학관까지도 문을 닫았다.
보안 때문에 손가방조차 휴대할 수 없다는 Visitor Center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댐을 위에서만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관광도 할 겸 점심 해결할 곳도 찾을 겸 곧바로 Wahweap으로 향했다.
댐에서 윗쪽을 바라 본 광경.
점심식사는 Wahweap을 돌아보던 중 차나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적당한 Picnic Area를 찾아 해결했다.
미리 사가지고 간 짜파게티를 가스렌지로 끓였는데, 양이 적다고 아이들이 아우성이다. 아내와 세철엄마가 전기밥솥과 함께 즉석식품인 낙지비빔밥, 짜장밥 등을 가지고 근처에 있는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다.
관광객이 거의 없는 겨울철엔 공원내 화장실을 일부만 개방하고 있다. 띄엄띄엄 열어놓은 화장실들은 깨끗한 것은 기본이고 난방까지도 잘되어 있기 때문에 그 내부에 있는 전기를 이용해 끓여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차를 그 앞에 대놓고 기다리기를 한참, 조리가 다 된 밥솥을 급히 싣고 가서 아이들에게 배식을 했다. 뜸을 충분히 들이지 않아서인지 밥이 약간 설익었다. 아이들은 몇 숟가락 뜨다가 모두 쓰레기봉지에 버려 버리고... 애는 썼지만 결과가 그렇게 되었으니 한바탕 해프닝이 됐다.
어쨌든 점심식사를 그렇게라도 해결하고 Big Water를 지나 Smoky Mountain Rd로 들어섰다.
비포장 길인데다 노면이 좋지 않아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는 도로였다. 그저 평범하게 시작된 주변경치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기묘함을 더해 갔다. 돌아 나오는 차를 입구에서 한 대 만났을 뿐 다른 관광객을 거의 볼 수 없었다. 한참을 가다보니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차에서 내려 주변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탄성을 연발하며 들어가기를 한참, 눈앞에는 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네비게이션에서 도로가 끝났다면서 호수가 시작된 것으로 나온다. 앤틸롭포인트처럼 가뭄으로 호수의 물이 줄어들었기 때문인가 보다.
길이 나있는 끝까지 가보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마나님께선 무섭다며 그만 돌아가자고 성화를 댄다. "어디를 가든 이러니 무슨 구경을 제대로 한담..." 마음속에서 이런 불만이 올라왔지만, 내일 세도나 관광을 위해 플래그스탭까지 먼거리를 이동해야 할 일도 있어 그만 차를 돌렸다.
나오는 길에 아까 봤던 중년의 부부 중에 여자만이 인적이라고는 없는 길을 혼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호기심에 "여자가 혼자서 무섭지도 않은가 보다"라거나 "둘이 싸우고 토라져서 저러나?" 라는 등의 각자 추측을 얘기하면서 지나쳤다. 그런데 여자 뒷쪽 저 만치에서 남자가 차를 몰고 천천히 뒤따르고 있었다. 아마 걸으며 주변경치를 가까이서 감상하려는 부인과 그를 배려하는 남편이 아닌가 싶었다.
Smoky Mountain Rd.에서 만난 기이한 풍경. 내려서 만져보니 시커먼 색깔의 흙이 딱딱하게 굳어있고 그위에 빗물이 흘러내리면서 만들어낸 골이었다.
Smoky Mountain Rd.에서 만난 기이한 풍경.
Smoky Mountain Rd.에서 만난 기이한 풍경. 석회암지대가 물길에 쓸리고 녹으면서 만들어낸 형상인듯...
Smoky Mountain Rd에서 나와 Flagstaff를 향해 발길을 돌린 시각이 오후 4시 50분경, 150마일을 달려야 하는 먼거리다. 남쪽을 향해 우리가 내려가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Tuba City의 반대쪽(왼편)에 보이는 곳이 그랜드캐년이다. Page에서 얼마 내려가지 않아 만나는 왼쪽의 89A 도로로 접어들면 그랜드캐년 North Rim으로 갈 수 있다. 겨울에는 눈이오면 Jacob에서 North Rim으로 들어가는 차량을 전면통제를 한단다. 이런 저런 제약을 무릅쓰고 가보기엔 왕복 110마일이라는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져 처음 일정을 짤 때 포기하고 말았다.
어둑어둑해질 무렵에야 플래그스탭을 향해 출발했다.
주변에 인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두운 길을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외롭게 밀어내고 있는데 갑자기 개처럼 생긴 동물이 차 앞을 가로 질러갔다. 늑대나 뭐 그런 종류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이번 여행에서는 밤길 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계획을 짰는데, 오늘은 일정이 늘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차량통행이 뜸한 산길에서는 로드킬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차가 파손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도 위험할 수 있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낮에 이동하는 것이 좋다.
이밖에도 여행 중에는 이동하면서 주변경치를 보는 것도 관광의 일부다. 하지만 밤에 이동하게 되면 관광지만 점처럼 기억에 남게 된다. 이런 것들이 야간 이동을 피해야 하는 이유다.
오늘 묵게 될 플레그스탭은 그랜드캐년과 세도나의 중간쯤에 있는 제법 큰 도시로, 그랜드캐년 관광에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곳이다. 출발 전 호텔을 예약하면서 세도나에 알아보니 방 하나에 160불 정도로 숙박료가 너무 비쌌다. 그래서 플레그스탭쪽을 알아본 것이었는데 세도나에 비해 절반 정도로 예약을 할 수 있었다.
7시가 훨씬 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기온은 뚝 떨어지고 시내 곳곳에 눈이 쌓여 있었다.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대니 거리가 황량하기 그지없다. 두 시간 반 남짓 달려왔을 뿐인데 날씨 차이가 상당하다.
내일도 일찍 출발해야 하니 정리를 서둘러야겠다.
[Tip !!!]
나바호발전소(Navajo Generating Station)
설계 발전량 2,250MW, 총 발전량 2,409.3MW의 석탄화력발전소다. 애리조나, 네바다, 캘리포니아 지역과 콜로라도강의 물을 애리조나주의 중부와 남부로 보내기 위한 펌프 시설에 전기를 공급한다.
1950~60년대 남부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네바다 등지에 인구가 증가하면서 이들 지역의 전기 수요가 커지자 브리지캐년과 마블캐년 등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방안이 우선 검토됐다. 하지만 그랜드캐년의 훼손을 염려하는 National Park Service의 반대에 부딪혔고, 그 대안으로 나바호발전소 건설이 결정됐다.
총 공사비 6억5천만 달러를 들여 1970년에 공사를 시작해 1976년 완공했다. 발전소 연료로 인근에 있는 카옌타 광산에서 나오는 석탄을 연간 8백만 톤 소비한다.
발전소에는 775피트(236미터) 높이의 애리조나에서 가장 높은 굴뚝 세 개가 있다. 배출가스 정화시설을 갖추기 위해 같은 높이에 직경이 더 넓었던 원래의 굴뚝을 허물고 1990년대 후반 새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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