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데스밸리 일정이 잡혀 있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모든 출발준비를 마치고 여섯시에 체크아웃을 하기로 세철네와 약속을 하고 셀폰에 맞춰 놓은 기상시간이 새벽 5시. 벨이 울리는데도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꾸물대다 6시가 돼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여러 날 계속된 여행으로 쌓인 피로가 5시간 남짓 잔 것으로는 풀리질 않는 모양이다.
세철네 방에 전화를 한 다음, 아내와 아이들을 깨웠다. 아내가 눈을 뜨면서 하는 말이 "나 어제 저녁에 100불이나 땄어!"였다. 2시경에 방으로 돌아왔다니까 잠을 세 시간 정도 밖에 못잔 것이다. 하지만 돈 딴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그 얼굴이 그다지 피로해 보이진 않았다.
7시에 체크아웃을 했다.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어제 들어오다가 봐 둔 Las Vegas Blvd.상에 있는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의 Ginseng BBQ라는 한국식당을 찾아 갔다. 내부는 제법 넓고 깔끔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딱 한 명의 한국인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일행이 두 테이블에 나눠 앉았다. 메뉴판을 펼쳐 보니 갈비탕이 18불, 비빔밥은 16불, 순두부, 된장찌개가 각각 18불 내외로 엄청 비쌌다. 이른 아침시간에 들른 것인데 그냥 나올 수도 없는 일이라 주문을 했다.
주문하면서 갈 길이 바쁜 우리 사정을 얘기했는데도 음식이 나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8불 정도 받으면 적당할 것 같은 갈비탕을 18불씩이나 받고 있으니 바가지를 단단히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받아본 청구서엔 7인분의 간단한 아침식사 비용이 130불 가까이 됐다.
바가지 요금 만큼이나 황당했던 것은 웨이트리스가 청구서를 가져오면서 팁으로 음식값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아예 함께 적어 온 것이었다.
팁이라는 것이 원래 손님 입장에서 종업원으로부터 얼마나 훌륭한 서비스를 받았는지를 평가해 그 대가로 주는 것인데, 이 식당 종업원은 거꾸로 자신이 제공한 서비스를 스스로 최상이라고 평가한 것인지 최고 수준인 20%를 강요했다.
식사를 하면서 손님이 느낀 종업원들의 서비스가 매우 만족스러웠다면 20%를 팁으로 줄 수도 있지만, 이처럼 청구서에 적어오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닐뿐더러 매우 무례한 짓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이렇게 까지 하지 않으면 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경우가 아니었다.
환한 표정 한 번 짓지 않고 시종 무뚝뚝한 얼굴로 서빙하고, 음식도 오래 기다리게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팁을 강요를 하다니. 교포들의 팍팍한 삶 때문이라 생각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하나?
종업원을 불러 청구서를 다시 가져오게 하려고 하는데 집사람이 말린다. 우리도 먼 길을 떠나야 하니 그냥 좋게 넘어가자고 한다. 그냥 참고 말았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라스베가스에서는 언짢은 일들을 더 많이 겪었다.
※ 미국의 팁문화
캘리포니아에서는 통상 세금(8.2%)이 붙기 전 음식값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을 팁으로 계산해 준다. 손님 입장에서 자신이 받은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그보다 적은 금액을 놓거나 심한 경우 아예 안 줄 수도 있다. 하지만 팁을 아예 안 준다는 것은 먼저 매니저를 불러 따지고 사과를 받을 정도로 불쾌한 일을 당했을 경우다.
미국의 음식점, 미장원과 같은 서비스 업소에서는 업주가 종업원들에게 급여를 최소 금액만 지급하거나 아예 주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의 대부분 서비스 업소 종업원들은 업주가 고용만 해주면 손님으로부터 받는 팁이 주 수입원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식당엘 가면 종업원들의 얼굴엔 항상 미소가 떠나질 않고 친철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성가실 정도로 계속 테이블에 찾아와서 필요한 것이 없는지를 묻곤 한다. 그렇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손님으로부터 그 대가로 팁을 후하게 받는 것이다.
한국의 식당에서 불친절한 종업원들을 심심찮게 만났던 일들을 생각해 보면 팁이라는 것이 합리적인 문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팁에 익숙하지 않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그냥 가욋돈이 나가는 것처럼 아깝게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대학생들은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기 때문에 손님들이 팁을 어떻게 주고, 또 그것을 받기 위해 어떻게 서비스를 해야 하는지를 잘 알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을 통한 대리경험 때문에 식당엘 가면 팁을 후하게 주게 된다고도 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미장원이나 이발소의 경우 주인이 직접 하는데도 팁을 주는 반면, 카센터 같은 곳에서는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미국인에게 물어봐도 왜 이발소에 가서는 주인에게도 팁을 줘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늘 그래 왔다는 이야기 밖에는... 카센터의 경우엔 기술자들이 오너로부터 시간당 20불 내외의 고임금을 받기 때문에 고객들이 굳이 팁을 줄 필요가 없다고 한다. 뭐 굳이 팁을 주면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면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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