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채우고 타이어에 공기를 보충한 다음부터 라스베가스로 향하는 길은 세철아빠가 운전을 맡았다.
가야할 거리가 273마일. 쉬지 않고 달리면 네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다.
조수석에 앉아 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몸이 이리저리 쏠리면서 잠결에 느껴지는 속도감이 장난이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걱정스레 바라보니 속도계가 80 ~ 90마일 사이를 오락가락 한다.
차를 렌트하면서 비용을 줄이려고 별도 보험을 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과속을 하다가 만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됐다. 집에서 쓰는 승용차에 가입한 AAA 보험을 그대로 활용하는 조건이라, 나와 와이프가 운전을 했을 경우에만 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천천히 가자고 사정을 해도 좀체 속도가 줄지 않는 것을 보니, 세철아빠의 스피드 본능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덕분에 도착 예정시간이 많이 앞당겨 지겠다는 기대도 했지만, 걱정 때문에 속도를 느긋하게 즐기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Williams에서 Kingman까지 가는 도로 주변도 사막에 캐년 지형이 어우러진 나름대로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었지만 그 동안 돌아본 곳과 비교돼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Kingman에서 우회전해 93번 도로로 접어들었어야 하는데, 어! 하는 순간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그 바람에 Bullhead City쪽으로 한참을 갔다가 되돌아 오느라 그 동안 과속으로 벌어 놓은 시간을 많이 까먹었다.
지도상에는 93번 도로가 라스베가스로 가는 지름길로 나온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 Hoover 댐 약 6마일 전방에서부터 차들이 밀리기 시작해 후버댐을 지나는데만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10Km 남짓의 거리를 지나는데 그 정도 시간을 지체했으니 출퇴근 시간에 서울시내 정체구간을 지나는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야 주변의 지인으로부터 후버댐 주변이 상습정체 구간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전에 이런 정보를 알았더라면 93번 도로를 피해 갔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 덕분에 5시 전에 도착하려던 것이 7시가 가까워서야 라스베가스의 불빛을 만날 수가 있었다.
정체구간을 지나며 보니, 길가의 표지판이 후버댐 구간에 개설 중인 우회도로가 2008년 말경에나 개통되는 것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이 안내문이 Kingman에 이르기 전 40번 도로상에 설치돼 있었더라면 라스베가스에서의 일정이 그나마 괜찮아 졌을텐데...
그리고 중요한 것은 Kingman에서 부터 후버댐 못 미친 곳의 경찰 검문소까지 약 70마일 구간에는 어떤 주유소나 휴게소도 없다는 것이다.
Kingman을 지날 무렵 아이들이 화장실 가고 싶다는 얘기를 했는데 곧 다시 나오겠지하고 그냥 지나친 것이 내리 70마일을 쉬지도 못하고 달려야 했다. 후버댐 직전의 경찰 검문소 근처에 이동식 간이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볼트식이라 아이들이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라스베가스에 도착해서야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었다.
벨라지오 호텔 광장의 분수쇼. 15분 간격으로 약 5분간에 걸쳐 흥겨운 음악에 맞춰 분수공연이 진행된다.
흔히 라스베가스를 도박의 도시라고들 하지만, 수준급의 뮤지컬, 마술, 음악 공연과 같은 볼거리들도 꽤 많다. 방문객을 많이 끌어 들이면 그들 중에서 도박장을 찾는 손님도 덩달아 늘어날테니 호텔들이 그렇게 하는 것일 게다. 이밖에도 쇼핑센터, 첨단 분수, 운하 같은 시설도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 정도의 구경거리 들이다.
라스베가스의 쇼들 중에서 유명한 O' SHow나 Ka Show는 무대 주변 좌석이 150 ~ 200달러나 하는 입장료가 엄청나게 비싼 공연이다. 좀 더 싼 것으로 1인당 입장료가 40 ~ 80달러 정도 하는 마술쇼나 노래 공연 등도 있기도 하다. 우리는 하룻밤 밖에 머물지 않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근사한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 투어만 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호텔은 Luxor가 인터넷 홈페이지(www.luxor.com)에 내 건 Special Offer를 이용해 4명씩이 묵을 수 있는 방 2개를 72달러씩에 예약할 수 있었다. 똑같은 방이 이튿날인 금요일엔 약 240달러, 토요일엔 180달러로 뛴다. 다시 생각해 봐도 싸게 예약을 잘한 것 같다.
라스베가스에서 알찬 관광을 위한 세부계획은 와이프가 짰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결과, 벨라지오호텔 뷔페(The Buffet)는 꼭 먹어봐야 한다는 얘기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벨라지오 호텔의 뷔페로 풀어주기로 했다.
음식값은 1인당 40달러다. Luxor호텔에 체크인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달려가 줄을 선 시각이 7시 20분경이었다. 저녁 10시 까지만 입장할 수 있다고 앞에 쓰여 있는데, 언제 입장할 수 있으지 짐작이 안 갈 정도로 대기줄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앞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기다려야 할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자기네는 지난 일요일부터 줄을 서있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그런데 먹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만족스럽거나 환해 보이질 않는다. 1시간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슬슬 불안감이 밀려온다. 만약 들어갔다가 기대에 못미치면 어떻게 하나...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을 달래고 달래 결국은 1시간 40분을 기다려서야 입장할 수가 있었다.
우려했던 대로 막상 들어가서 음식을 먹어 본 소감은 정말 황당했다. 이런 것을 먹자고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1인당 40불씩이나 내고 들어 왔던가? 얼음속에 재워 놓은 킹크랩 다리는 너무 짜서 한 개도 채 먹기가 어려웠다. 주먹만한 밥에 코딱지만한 스시를 붙여 놓은 생선초밥, 내맛도 네맛도 아닌 국적 불명의 미소 장국 ... 스테이크는 질겼고 디저트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음식 부스러기도 바닥 여기 저기 떨어져 있어 불결하기까지 했다.
이런 곳을 라스베가스엘 가면 꼭 가보라고 인터넷에서 추천들을 하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좋았던 곳인데 우리만 너무 큰 기대를 안고 갔다가 그 만큼 실망을 크게 한 것이었을까?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실망만 한 아름 안고 문을 나선 시각이 9시 50분경, 만약 공연이라도 하나 보자고 예약을 했더라면 그야말로 큰일 날 뻔했다. 그 호텔 앞에서 분수쇼를 잠깐 본 다음 Luxor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나니 11시가 넘었다. 호텔투어고 뭐고 모든 의욕은 사라지고 피로에 절은 몸은 그냥 침대로 가라고 아우성이다.
참고로 많은 분들이 라스베가스엘 가면 O'쇼든 Ka쇼든 하나는 꼭 봐야 한다고들 한다. 그 웅장한 스케일하며 인간 상상력의 한계가 끝이 없음을 보여주는 공연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80분 공연에 150달러나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값싸고 훌륭한 공연들도 많으니 각자 시간과 주머니 사정에 따라 선택하면 될 것 같다.
내일 아침은 시내에 들어오면서 Las Vegas Bldv.상에서 본 한국식당에 가서 맛있게 먹자고 세철네와 약속을 하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 그만 퍼져 버렸다.
와이프와 세철이 엄마, 아빠만 1층에 있는 도박장으로 내려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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