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스의 호텔에서 아침식사는 일찍 서둘러 끝냈다.
그랜드캐년으로 향하기 전, 호텔옆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가득 채웠다. 세도나보다 갤런당 60센트 가까이 높은 3불 60센트로 무척이나 비쌌다. 차에는 아직 30% 정도 연료가 남아있었지만, 가는 도중의 주유소 사정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출발해서 한 10마일 정도밖엔 가지 않아 한 주유소가 나타났다. 밖에 내걸린 가격 표시판엔 레귤러(옥탄가 87로 일반 휘발유)가 갤런당 3불로 윌리엄스에서 보다 60센트 정도 싸게 적혀있다. 외진 곳으로 가면 기름값이 더 비쌀지 모른다는 염려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생각이 너무 앞서갔다 보다.
그 곳 말고도 그랜드 캐년 South Rim까지 가는 64번 도로상에는 기름값이 싼 주유소가 여러 군데 있었다.
쓴 입맛을 다시며 64번도로를 타고 그랜드 캐년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중에 갑자기 차에서 알람이 울리며 계기판에 "Low Tire Pressure"라는 경고문구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모뉴먼트밸리나 글렌캐년에서 비포장길을 많이 달린 것이 타이어에 어떤 문제를 일으킨 듯 했다.
한국에서는 웬만한 규모의 주유소에 들어가면 공기압 측정기가 달린 에어 컴프레셔가 있어 쉽게 체크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새차를 사는 바람에 지금까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내왔으니 이 시골 어디에 가서 점검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찜찜하긴 했지만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바람이 빠져 있다거나 주행중 쏠림 현상이 나타난 것도 아니어서 일단은 조금 더 운행하면서 형편을 지켜보기로 했다.
50분 정도를 달려 드디어 그랜드 캐년에 드디어 도착했다.
매년 500만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계곡 바닥까지의 깊이가 1.6Km에 달해 "The 1 mile canyon"으로도 불린다는 곳이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South Rim과 North Rim으로 나뉘는데, 우리는 South Rim에 다다른 것이다.
그랜드 캐년은 그 규모와 명성에 걸맞게 겨울인데도 역시나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입구의 매표소도 다른 캐년들과는 달리 상당히 여러 줄이고 그 모든 레인들에는 많은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South Rim은 연중 내내 개방되는데 비해, 반대쪽에 있는 North Rim은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까지 눈이 많이 내리면 사전 예고 없이 출입을 통제한다. 입구에 있는 Jacob Lake에서 차량 통행을 막는다.
North Rim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는 Zion Canyon과 Bryce Canyon 사이를 통해 Kanab까지 와서 89번 우회도로(Alt. 89)를 타는 방법과, 반대쪽의 Glen Canyon에서 Sedona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는 Bitter Springs 인근에서 Alt. 89(89A)를 이용하는 두 가지가 있다.
South Rim에서 North Rim으로 가려면 계곡을 가로질러 갈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위에 말한 지점까지를 약 220마일 거리를 돌아가야 한다.
처음 여행계획을 세울 때는 Glen Canyon 관광을 마치고 North Rim에 들를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편도 55마일의 거리를 들어갔다가 만약 눈이라도 내려 통행이 막혀 있으면 일정이 적어도 6시간 정도 비게 된다는 염려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지나서 생각해 보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날씨문제는 글렌캐년을 출발하면서 North Rim의 Visitor Center에 전화로 문의해 보면 될 것이고, 만약 통행금지가 되어 있다면 남는 시간을 세도나 관광에 활용해도 될 터였다.
하지만 세도나 관광은 하루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하고 비용도 절약할 겸 Flagstaff에 호텔을 예약하고 그에 맞춰 일정을 짰기 때문에 도중에 계획을 변경할 수가 없었다.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경치는 North Rim쪽이 더 뛰어나다고 하는데 겨울에 이곳을 찾은 우리는 South Rim만을 돌아보는 것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그랜드캐년 관광은 차로 돌면서 각 포인트의 전망대에만 들러 보는 방법과 계곡 밑에까지 트레일을 따라 내려갔다 오는 방법, 그리고 경비행기를 타고 둘러 보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경비행기는 꼭 타봐야 한다는 의견과 위험한데 비싼 돈까지 들여서(1인당 150달러 정도라고 함)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것으로 엇갈렸다. 방문시기가 겨울이나 한여름이 아니고 시간여유까지 있다면 계곡 밑까지 내려가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른 국립공원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말(Horse-back Riding) 또는 노새(Mule-back Riding)를 타고 트레일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직접 걸어서 계곡 밑까지 가기에 무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것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Visitor Center 부근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처음 들른 곳이 Mather Point었다. 전망대에서 계곡을 바라본 순간 이 곳이 왜 그랜드 캐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지 적어도 내게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게 느껴졌다. 그 동안 여러 캐년들을 돌아 이곳까지 왔지만, 보는 순간 자연 경치가 이토록 장엄하다는 느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캐년들에서 들었던 아름답다나 신기하다 또는 거대하다는 느낌과 이곳에서의 장엄하다는 느낌은 아예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Mather Point에서 바라본 그랜드 캐년. 그 장엄함에 심장이 순간 멎는 듯 하며 구글 어스와 사진을 통해서 봤던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이 밀려 왔다. 뒷쪽이 North Rim이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을 만큼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는 이곳 전망대에도 역시나 중국인 관광객들이 어림잡아 절반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 단체관광객이 들르는 명소는 언제나 중국인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사진 몇 컷을 찍고는서둘러 Mather Point 전망대에서 벗어났다. 도저히 사람들에 밀려서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Rim Trail을 따라 Yaki Point쪽으로 걸어 올라가는데 아이들이 춥다며 차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아마 걷기가 싫은 것 같았다. 모두들 차로 돌려보냈는데 우리집 큰아이 연지는 엄마, 아빠와 함께 걷겠다며 남았다. 기특한 생각이 들어 손을 꼭 잡고 걷다가 아무래도 차에 아이들만 보낸 것이 마음에 걸려 1Km 남짓 산책 끝에 발길을 차로 돌리고야 말았다.
그랜드 캐년을 따라 나란히 나있는 Rim Trail. 누구라도 걷기에 무리가 없는 평지 도로로, 보행자가 많지 않아 느긋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다.
Yavapai Point에 있는 박물관.
Maricopa Point에서 바라본 모습. 맨 아랫쪽에 콜로라도강과 트레일이 보인다.
Maricopa Point까지 가면서 군데군데 차를 세워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 몇 장씩을 찍은 다음 되돌아 나오는 것으로 그랜드캐년 관광을 마쳤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이곳에서 최소 1박 이상은 하면서 계곡 밑에 까지 내려갔다오는 트레일을 꼭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추위속에 지쳐있는 애들 때문에 서둘러 이 정도로 관광을 마쳤다.
점심은 공원내에 있는 마켓에서 전기구이 통닭을 사다가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 속에서 해결했다. 다음 목적지인 라스베가스에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먹으면서 주차장을 둘러보니 우리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차와 주변 벤치에서 간단하게 점심 요기를 하고 있었다.
라스베가스를 향해 출발은 하는데, 자동차 계기판에 나타난 "Low Tire Pressure"라는 사인이 영 마음에 걸린다. 공원을 벗어나 조금 달리다 보니 주유소가 나오길래 들어가서 타이어 공기를 보충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주유기 한켠에 에어펌프가 있다고 알려주며 볼펜처럼 생긴 것을 게이지라고 내주며 필요하면 쓰라고 한다. 과연 이것으로 공기압을 제대로 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아주 단순하면서도 조잡해 보였다.
에어펌프는 25센트 동전을 넣으면 작동하도록 되어 있었다. 세철아빠가 공기를 넣고 나는 게이지로 측정하면서 바쁘게 움직였다. 콩 튀듯이 했는데도 25센트로 한 번에 끝내지 못하고 펌프에 50센트나 바쳐야 했다.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하고 있는 세철아빠. 날씨도 추운데 고생하셨습니다.
공기를 보충하고 나서 시동을 거니 지금까지 나왔던 경고 메시지가 없어졌다.
이제 계속 괜찮을지 모르겠다. 자 이제 라스베가스를 향해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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