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7

3단으로 조성한 터...집터와 온실, 정원자리

3월 21일(일) 아침, 패딩을 하나 더 껴입고 어제 입었던 흙투성이 재킷과 바지 그대로 다시 서후리로 향했다. 겉옷을 갈아입으려고 했더니 마님께서 지저분해진 옷을 그대로 입고 다녀오라신다. 어제 중단했던 온실자리와 정원 사이 조경석쌓기를 이어갔다. 중간중간에 큰돌 몇 개를 놓고 흙을 채우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저렇게까지 정성을 들여야 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다 쌓고 났더니 근사해 보였다. 역시 초보자와 전문가는 안목이 달랐다. 그 다음 작업으로 처음 만들었던 입구 쪽을 막으면서 그 자리에 집터와 온실을 오갈 수 있는 통로를 석축이 아닌 법면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법면으로 처리해야만 집터에서 정원이나 온실로 차가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터를 3단으로 나누고 통로를 법면으로 꾸며 놓으니 이전에 비해 ..

건축 착공신고에 따른 고용보험, 산재보험

그제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로부터 우편물을 한 통 받았다. 내용물을 보니 ‘건축 착공신고에 따른 고용·산재보험 가입안내문’과 고지서였다. 노무비, 산재보험료, 고용보험료를 내라는 것으로, 총 금액이 180만 원에 달했다. 15평 내외의 작은 집을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짓겠다는 계획이었던 만큼 이 보험료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비용이었다. 안내문을 살펴보니 고용·산재보험 의무가입대상은 아래와 같았다. 1. 산재보험 : 모든 건설공사 2. 고용보험 ① 건설사업자 :건설면허 보유여부와 관계없이 사업자등록을 하고 건설업을 행하는 자 ② 건설사업자가 아닌 자 : 연면적 100㎡ 초과인 건축물의 건축 또는 연면적 200㎡ 초과인 건축물의 대수선에 해당하면서 총 공사금액이 2..

코로나-19가 양평에 일으킨 바람

일을 보기 위해 양평 부동산에 가서 1시간가량 앉아 있는 동안 집이나 땅을 보러 온 서울사람들이 연신 들락거렸다. 부동산 사장은 코로나-19 광풍이 불기 시작한 뒤 피난처를 찾아 서울서 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며, 일이 잘 되는 것과는 반대로 그들을 통해 바이러스가 옮겨 오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코로나-19와 같은 돌림병이 앞으로도 또 올 거라고 보기 때문에 이 참에 안전하게 남과 떨어져 살 수 있는 곳을 찾으려는 걸로 보였다. 3개월 정도만 살 수 있는 빈집을 찾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그런데 양평에 빈집은 더러 있지만, 요즘엔 집주인들이 직접 내려와 생활하는 경우가 많고 단기임대는 꺼리는 경향이라고 했다. 서울을 비롯한 도시의 아파트라면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게 되는 순간..

임야개발 허가를 위해 측량회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휴무인 4월 7일 '신문의 날'에 맞춰 미리 약속해 둔 일들을 처리하러 양평에 다녀왔다. 먼저 측량회사 관계자와 만나 임야를 대지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허가 관련 대행계약을 체결한 뒤, 부동산에 가서 도로용지 이전을 위한 토지교환계약과 등기 관련 일을 했다. 임야를 대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군청에서 산림형질변경 허가를 받은 다음 토목공사를 해야 한다.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양평지역에서는 산림형질변경만으로는 임야를 대지로 개발할 수 없고 건축까지 함께 허가를 내야 한다고 한다. 이 때 첨부해야 하는 서류로는 공사를 어떻게 진행하겠다는 토목공사계획서와 건축허가에 필요한 건축설계서, 소나무에 치명적인 해충으로 알려진 재선충의 방제계획서 등이 있다. 이 같은 서류를 갖추는 것은 전문적인 일이라 일반 개..

양평서 드디어 땅을 찾은 것 같다 !!!

11월 16일(토) 법원경매에 올라온 땅을 둘러보기 위해 이른 아침을 먹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 문호리를 향해 차를 달렸다. 올림픽대로와 경춘고속도로를 지나 서종IC에서 빠져 조금 가다보면 커다란 테라로사 건물이 나타난다. 전에는 그냥 지나치곤 했는데, 오늘은 아내가 아침도 안 먹고 나온 길이라 모닝커피 한잔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대찬성이다.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에 빵을 먹으며 아내는 아주 좋아했다. 이런 소소한 일에 느끼는 행복이라니... 경매 사이트에 나온 토지를 현장에 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지대가 꽤 높은 곳이었다. 게다가 남쪽은 답답할 정도로 높았다. 그 지역의 지형이 전체적으로 그러니 주변 토지가 모두 마찬가지였다. 경매물건은 역시나... 실망을 하고 차를 돌려 나오면서 문호리 다운타운에..

아!! 이제는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

나는 충북 보은의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다. 서울유학생활은 중학교 2학년 10월 초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농촌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 서울 생활은 초기부터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린 나이라 부모님 품이 몹시도 그리웠기 때문인 점도 있었지만, 맑은 샘물을 떠마시며 살던 내게 텁텁한 보리차는 적응이 어려웠다. 마시면 갈증이 해소되기는커녕 뭔가 속이 답답해지기까지 했다. 사람과 차가 복잡한 것도, 24시간 웅웅 거리는 도시소음도 싫었다. 고향집 사랑채 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솔잎과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가던 바람소리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갔다. 외양간을 지키고 앉아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되새김질하던 소도 보고 싶었다. 사랑 마루에 앉으면 보이던 나무를 옮겨 다니며 짝을 맞추고 지저귀던 꾀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