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11

텃밭에 모종내기

5월 4일(토) 어제 가식해 놓고 온 상추, 고추 등 모종을 오늘 반드시 심어야 하는데 오전에 광화문서 결혼식이 있다. 아내의 고종사촌 딸 혼사인데 집으로 돌아와 작은애를 태우고 부랴부랴 양평으로 출발한 시각이 오후 두 시였다. 내일부터 어린이날 대체휴일인 모레까지 이틀간 내리 비예보가 있으니  오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나마 빠른 길을 택한다고 잠실대교를 건너갔는데 다리 위 램프에서부터 차가 줄지어 길게 서있다. 하남으로 가서 팔당대교를 건너가는 것보다는 나을 거란 생각에 이 코스를 택했는데 강북강변로에 들어서는 것조차 쉽지 않아보였다. 어린이날이 끼어 있는 사흘연휴라 그런지 도로는 차들로 넘쳐 났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가는 사람에,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 뵈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감나무가 떠나갔다. 추위를 못 이기고...

5월20일(토) 오늘 수능리 친구집에 대학 1년 후배 세 명이 놀러온다고 해서 함께 하기로 했다. 그들 중 한 명은 내가 군 제대 후 3학년에 복학했을 때 만나 2년간 공부를 함께 했고 지금도 친구로 지내는 사이다. 다른 두 명은 수능리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사이로 각각 대학교수와 반도체 관련 사업가로 활동 중인데 나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 그들은 오후 4시쯤 도착하기로 돼 있는데, 나는 텃밭에 할 일이 많은데다 주말이면 조금만 늦어도 막히는 팔당대교를 헤치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5월 초에 심은 들깨모가 추위 때문인지 모두 녹아버려 새로 마련하려고 양수리 종묘상에 들렀는데 이미 공급이 끝났다고 해서 대신 대파모만 몇 개 사서 나왔다. 목왕리를 지나 벗고개 중턱의 두물머리IC..

두 달여 만에야 가봤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두 달여 만에 양평길에 나섰다. 출발하며 본 자동차의 외기 온도계는 8.5도였는데 팔당대교를 건널 무렵부터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시간 가까이 지나 서후리에 도착하니 1.5도를 가리킨다. 7도나 차이가 났다. 해가 이미 떠오른 시각인데도 그러니 같은 시간대로 비교하면 서울과 서후리의 온도차는 훨씬 커질 것 같다. 차에서 내리는데 찬 기운이 확 몰려 왔다. 순간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온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될 정도의 날씨였다. 입에서 나온 하얀 김이 찬 공기 속으로 퍼지다 이내 사라졌다. 주변 집들의 지붕은 온통 허연 서리모자를 쓰고 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동네가 여태 조용하다. 개들도 추위 때문에 집에서 나오질 않았는지 늘 들리던 짖는 소리도 없다. 터를 미처 둘러보기도..

친구들과 봄밭 함께 일구니, 이 즐거움 어디에 비길까?

4월 16일(토) 호주로 이민 가서 30년째 살고 있는 친구가 며칠 전 입국했다. 88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해 다니다가 한국사회 현실이 너무 팍팍하다며 결혼과 동시에 이민백을 싸들고 이 땅을 떠나 각고의 노력으로 호주서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친구다. 입국자 격리의무제가 얼마 전 없어지자, 오랫동안 보지 못한 지인들도 만나고 비즈니스도 할 겸 들어온 것이다. 이 친구가 그동안 내 블로그 글을 보고 양평땅이 궁금하다는 얘기를 몇 번 했는데 이번에 날짜를 맞췄다. 아침 일찍 친구를 만나 양평으로 향했다. 도중에 양수리에 들렀다. 수능리 친구가 상추 등은 한꺼번에 다 심으면 끝물 마감도 같은 시기에 이루어지니 2주 정도 간격으로 나눠 심는 게 좋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조금만 샀다. 종묘상 옆에 ..

가을 채소를 심었다

9월 4일(토) 2주 만에 찾은 서후리 텃밭엔 가을이 성급하게 내려온 모습이었다. 뜨거운 볕을 피하려는지 여름 내내 잎사귀 밑에 웅크리고 있던 호박들이 이제는 여기저기서 누런 자태를 온통 드러낸 채 누워 있었다. 그동안 볕을 가려주던 잎들이 절반쯤은 말라버렸고 석달여 동안 거름과 햇볕을 자양분으로 자란 열매는 더 이상 햇볕을 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여물었기 때문이다. 들깨도 잎들이 바래기 시작했다. 깨송이를 따보겠다며 잔뜩 기대를 품었던 아내는 누래지는 잎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아쉬워 했다. 아내가 고추를 따는 동안, 나는 배추와 무를 심으려고 상추를 가꿨던 자리를 삽으로 깊게 갈아 엎었다. 2주 전에 뿌려 놓은 퇴비를 골고루 섞어 주는 일도 함께 했다. 삽질은 언제 해도 힘이 들었다. 한 두..

서후리 공기, 서울과 달리 시원하고 상쾌하네

31일(토) 넘어간 양평의 공기는 전날까지의 서울과 달랐다. 등에 내리쬐는 햇볕이 여전히 화살이 꽂히는 것처럼 따갑고 아프기까지 했지만, 때때로 몸을 휘감고 지나가는 바람엔 시원함이 묻어 있었다. 비처럼 흐르던 땀도 그런 바람 앞에서는 잠시 내리길 멈췄다. 구름이 잠깐씩 해를 가리고 그에 맞춰 바람까지 불어주면 상쾌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1주일 내내 폭염에 시달린 몸이라 작은 온도 차이도 크게 느껴는 면이 아마도 있을 것이다. 이런 바람을 만나니 오래 전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는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이었다. 한여름이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만큼 시원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여름방학이면 툇마루에서 뒹굴며 시원한 바람을 기다리곤 했다. 나무잎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바람이 숲..

폭염이 시작된다는데 고장난 에어컨

지난주 토요일(17일) 저녁, 에어컨이 고장났다. 그날 낮에만 해도 시원한 바람을 잘 내뿜던 에어컨이 저녁이 되면서 냉기는 빠진 더운 바람만 토해냈다. 엄청난 폭염이 시작된다는데... 월요일, 출근한 아내가 LG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했지만 전화연결조차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접속해 챗봇으로 고장접수를 하고나서 받은 수리기사 내방 일자가 28일이었다. 앞으로 열흘간을 에어컨 없이 버텨내야 한다는 얘기다. 코로나방역 4단계에 회사에 첫 확진자가 생기면서 전원 재택근무에 들어가게 됐으니 집에서 꼼짝 못하고 더위를 견딜 수밖에 없게 됐다. 유례를 찾기 힘든 폭염이 지속될 거라는 기상청 예보는 불행하게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월요일 정오 무렵이 되자 기온은 35도까지 올랐다, 앞뒤로 모든 문을 활짝 열어..

장맛비를 견뎌낸 텃밭의 친구들아, 고맙다!!

7월 10일(토) 코로나19 델타변이 바이러스가 본격 확산세에 접어들면서 이번 주 들어 가슴 쓸어내릴 일을 두 차례나 겪었다. 작은애가 지난 6월 말 들른 식당에서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다며 검사통보 문자를 받았고, 그로부터 이틀 만인 금요일 저녁에 아내까지 3일 전에 다녀온 골프장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문자를 받고 내내 좌불안석이던 아내는 토요일 오전 11시 쯤에 검사결과 음성이라는 통보를 받고서야 격리를 스스로 풀었다. 힘든 시간을 보낸 아내에게 위로가 필요해 보였다. 늦은 시각이지만 양평에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오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했다. 엄마와 같은 일을 겪고 일주일 넘게 외출을 삼가며 저녁에 한강산책만 하며 갑갑해 하던 둘째도 손뼉을 치며 따라 나섰다. 양평 가는..

처음으로 수확한 오이와 고추

6월 26일(토) 이번 주말은 부모님 산소에 다녀올 계획을 세우고 양평행은 건너뛰려 했다. 어제 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주말에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예보가 틀리기를 바랐는데,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정도 비라면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향에 계시는 형님께 전화를 드렸다. 형님께서는 서울보다는 비가 많이 오는 것 같다며 다음에 내려오라고 하셨다. 산소에서 함께 보기로 했던 대전 누님께도 전화를 드렸더니 다음으로 미루자는 말씀이셨다. 내리는 양이 적더라도 비가 오면 산소에 오래 머물 수가 없다. 잡초도 뽑고 형제들과 산소에 둘러앉아 그동안 지낸 얘기도 나눠야 하는데 젖은 잔디 위에서는 그럴 수가 없으니 성묘 일정을 미루는 게 좋을 듯 했다. 그럼 오랜만에 ..

작은 아이, 강아지도 함께 한 양평에서의 하루

6월 18일(토) 오늘 양평행엔 둘째 아이와 우리(개)가 함께 했다. 식구 중에서도 둘째와 우리(개)는 아주 각별한 사이다. 한 달된 강아지를 입양해 키우기 시작한지 올해로 만 10년이 됐는데, 우리(개) 입양이 둘째의 간절한 바람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둘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개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2년여가 지나도록 허락하지 않자 2011년 8월 초 어느 날,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왔다. “아빠, 학교 끝나고 텅 빈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직접 열고 들어올 때 내가 겪는 외로움이 얼마나 큰지 알아? 그래서 개를 키우고 싶다는 건데 왜 허락해 주지 않는 거야. 아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제발 허락해 줘. 공부 열심히 하고 뭐든 다 할게” 아이가 엄마도 출근하고 없는 빈 집에 돌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