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토) 오전, 비가 잠시 멈춘 틈을 타서 고사를 지냈다
전에 장인어른께 토목공사를 말씀드렸더니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꼭 고사를 지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공사를 맡을 윤 소장도 지내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놨다.
토목공사에는 아름드리 잣나무들을 베어내는 등 지금 땅위에 있는 생명들을 빼앗거나 내쫒는 일이 따르니 이에 대한 부담이 작지 않았다. 그런데 고사를 지내면 이런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사를 지내기로 했다.
7일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8일(토) 아침에 가서 지낼까 했는데 예보를 보니 폭우가 계속 된다고 나왔다.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 아내에게 다음 주로 미루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금요일 저녁, 아내가 장인어른께 비 때문에 고사를 다음 주말로 미뤄야겠다는 말씀을 드리자 고사를 지낸다면 보시겠다던 장인어른께서는 바로 토요일 아침에 내려가시겠다고 했다.
토요일 아침 일어나 보니 하늘이 많이 훤해져 있다. 이 정도 날씨면 고사를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일어난 아내가 바로 장인어른께 전화를 드렸는데 동서가 운전하는 차는 이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듯도 해서 오늘 하루는 무얼 하고 지낼까 궁리 중에 윤 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나무전정 전문가를 불렀다며 오늘 와서 전정방법도 배우고 고사도 지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곳 날씨를 물었더니 괜찮다는 답변이었다. 고사음식은 술과 포만 있으면 된다고도 했다,
서둘러 아내와 길을 나선 시각이 아침 8시. 술과 떡은 양수리 가서 사기로 했다.
양수리 떡집에 가서 인절미를 판으로 산 다음 주위를 둘러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하나로마트가 보였다. 9시인데도 문이 열렸길래 들어가 막걸리와 수수떡, 포를 사서 서후리로 향했다.
고사는 땅 한복판으로 들어가 자리를 깔고 상위에 음식을 진설한 다음 나와 아내가 차례로 절을 하고 술을 올리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올렸던 술은 여기 저기 뿌렸다. 공사를 직접 하게 될 윤 소장께도 한 잔 올리라고 권했으나 착공 고사는 주인만 지내는 것이고 며칠 안에 본인 땅에도 고사를 지내야 한다며 사양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부복을 한 채로 있고 아내가 아래의 축문을 낭독했다.
고사를 지낸 뒤 소나무 전정을 했다. 내가 어디 어디를 자르고 정리하겠다는 의견을 내고 전문가가 그에 응답하는 식으로 세 그루를 직접 했다. 전정 전문가는 처음 하는 것치고는 괜찮게 한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유튜브로 공부를 한 덕분인지 개념을 깨닫고 나무에 적용하는 게 크게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톱질이 서툴러 보존해야 할 나무줄기에 간혹 상처를 내는 일이 생기곤 했다.
祝文
2020년 8월 8일, 토지주 000과 시공자 000이 천지신명과 이 땅에 있는 모든 생명께 삼가 잔을 올리며 아룁니다.
저 000은 산자수명하고 공기 좋은 이곳에 누옥을 짓고 가족과 함께 은퇴 후 생활을 영위코자 작은 땅을 마련하고 토목공사에 들어갑니다.
아름드리 잣나무들을 비롯해 많은 수목들을 베어내야 하는 일입니다. 항상 때 맞춰 볕이 들어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졌다 단풍이 든 뒤엔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던 평화로운 이곳 숲자락에 상처를 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있는 잣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와 풀들은 수십 년 동안을 지켜온 원래의 주인들입니다. 돌과 흙은 인간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이곳에 있었습니다.
엊그제야 이곳을 찾은 제가 부득이 하다고는 하지만 원래 주인들을 내몰거나 생명을 뺏는 일은 참으로 송구하고 애석한 일입니다. 이래도 되는 일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명시적으로 의사를 표하거나 고통을 호소할 수 없는 이곳의 원래 주인들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약소하나마 술과 포를 올립니다.
천지신명께서도 이를 기꺼이 흠향하시고 이번 공사로 희생되는 수목과 생물들이 다음 생에서도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 해주시기를 머리 숙여 간청합니다.
공사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함께 도와주시고, 000 소장님을 비롯해 일하는 모든 이들의 안녕도 늘 지켜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000
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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