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토)
호주로 이민 가서 30년째 살고 있는 친구가 며칠 전 입국했다. 88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해 다니다가 한국사회 현실이 너무 팍팍하다며 결혼과 동시에 이민백을 싸들고 이 땅을 떠나 각고의 노력으로 호주서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친구다.
입국자 격리의무제가 얼마 전 없어지자, 오랫동안 보지 못한 지인들도 만나고 비즈니스도 할 겸 들어온 것이다.
이 친구가 그동안 내 블로그 글을 보고 양평땅이 궁금하다는 얘기를 몇 번 했는데 이번에 날짜를 맞췄다.
아침 일찍 친구를 만나 양평으로 향했다. 도중에 양수리에 들렀다. 수능리 친구가 상추 등은 한꺼번에 다 심으면 끝물 마감도 같은 시기에 이루어지니 2주 정도 간격으로 나눠 심는 게 좋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조금만 샀다.
종묘상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때운 뒤 수능리 친구에게 출발을 알렸더니 우리가 서후리 도착한지 얼마 안 돼 건너 왔다.
셋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밭을 어떻게 일굴지 머리를 맞댔다.
우선 수능리 친구가 집에 다시 가서 퇴비 한 포대와 멀칭용 비닐을 가져 왔다. 윤 소장이 너무 바빠선지 퇴비를 못 가져왔기 때문이다.
수능리 친구와 함께 삽으로 텃밭 이랑을 만들기 시작했다. 호주 친구는 블루베리와 전 주에 심어 놓은 꽃잔디 등에 물 뿌리는 일을 했는데, 자신의 가드닝 경력이 수십 년이라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아주 꼼꼼하게 물을 줬다.
퇴비를 먼저 흩뿌리고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작년보다 깊게 일구려니 바위만한 돌들이 삽끝에 많이 걸렸다. 다져지지 않은 흙에 삽을 박아 넣을 때는 힘이 크게 들지 않는데, 크지 않더라도 돌이 삽날에 걸리기면 몇 배나 힘이 들었다. 주변을 더 넓게 파들어 가면서 돌의 끝을 찾아 캐내야 하기 때문이다.
수능리 친구와 마찬가지로 나도 농촌에서 나서 자랐는데, 친구 삽질은 영 격이 달랐다. 전문가 포스가 넘쳐 났다. 아무래도 나는 너무 귀하게만 커서 그런가보다. ㅋㅋ
긴 이랑 두 개를 만들고 비닐멀칭까지 했다.
앞에서 비닐을 뚫고 구멍을 파면 뒤를 따라가며 모종을 넣고 마지막 사람이 흙을 덮고 물을 주는 식으로 일을 해나갔다.
허리를 숙이고 땅을 파는 노동이었지만, 친구들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며 학창시절의 추억을 꺼내 펼치니 텃밭에 즐거움이 넘쳐났다. 그렇게 텃밭일은 순식간에 끝났다.
마당 중간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복숭아나무 한 그루를 마저 축대 쪽으로 옮기는 일을 이어갔다. 그런데 지난주에 옮긴 나무와는 다르게 뿌리가 더 넓게 번져 있고 땅까지 너무 단단해 삽이 잘 들어가질 않았다. 마침 꽃이 피는 중이라 옮기는 과정에서 뿌리를 많이 다치게 하면 나무가 힘들어 할 것 같은 걱정도 즐었다. 뿌리를 보호하고 흙도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넓게 넓게 팠다. 혼자서는 꽤 어려울 일이었다.
장정(?) 셋이 삽으로 파고 괭이로 긁어 내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길게 뻗은 큰 뿌리들을 결국 잘라내고서야 옮길 수가 있었다.
그 다음 작업으로 비가 내릴 때 물길이 우수맨홀로 바로 빠지도록 축대 쪽은 높이고 안쪽의 맨홀 주위는 낮추는 바닥 고르는 일까지 했다.
친구들 덕분에 오늘 많은 일을 할 수가 있었다. 부산서 전화한 아내에게 친구들과 일을 하는 중이라고 했더니 멀리서 온 친구에게 힘든 일을 시키면 어떡하느냐고 한 걱정을 했다. 이 많은 일들이 12시 반이 되기 전에 끝났다.
지난 주에도 갔던 정배리 풍년가든에 가서 점심식사를 한 뒤 수능리 친구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 1월 안식년이 시작된 수능리 친구는 그동안 부지런히 움직여 대문도 해달고 주차장 공사도 끝내 집을 아주 깔끔하게 만들어 놓았다. 가족과 함께 나무와 화초들도 부지런히 사다 심으며 정원도 잘 가꿔놨다.
전원생활에서는 집을 짓기 전에 할 수 있는 일과 집을 다 지은 후에라야 할 수 있는 일들이 나뉜다. 나도 얼른 집을 짓고 눌러 지내면서 일을 해야 할텐데... 기대와 걱정이 머릿속에서 마구 춤을 춘다.
호주 친구가 자신의 집에서 가드닝하는 사진을 보여 주는데 수준이 달랐다. 대지가 400평 가량 되고 지은 지 100년이 넘는 집이라고 했다. 마당에는 10m 가까이 돼 보이는 야자나무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좁은 한국 땅에서 도시인들이 꿈꾸는 전원생활과는 규모와 내용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아 보인다. 집을 가꾸는 경험과 노하우 등을 곁들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울로 올라 왔다.
친구야, 한국 다시 들어오면 또 와서 일좀 많이 하시게나~~
추신 : 호주친구가 돌아가서 보내 온 말
"경치 좋은 근교에 자기를 닮은 집을 짓고 그동안 미뤄뒀던 여유를 맘껏 누릴 한국 친구들이 많이 부럽다. 그동안 수고 많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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